중국에서 환대받던 한국 기업이 공장 임차료도 내지 못한 채 야반도주하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 2000년대 중반이다.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롯데마트의 문을 닫는 최근 조치를 보면서 중국은 절대 자본주의 체제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퍼졌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중국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차이나 퍼스트’ 시동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사드가 방어용이라는 명백한 논리를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중국의 태도다. 일본의 기존 사드가 대륙을 훤히 볼 수 있을 때도 가만있던 중국 아닌가. 한국 내에 중국의 일부라도 볼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기지 하나 없는지, 전에는 물어본 적도 없다. 중국이 사드를 미끼 삼아 포획하려는 먹잇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중국 경제는 긴박하다. 개혁과 개방을 주창한 덩샤오핑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집권 이후 성장률은 연간 10%를 상회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원자바오 당시 총리는 경기부양책으로 기대치를 높였지만 지금은 성장 목표치가 6.5%인 상대적 저성장 시대다. 더는 외형을 키우기 힘들다는 벽에 부딪힌 상태에서 중국이 떠안은 시한폭탄은 빈부 격차다. 농촌에 살면서 도시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민공’이 2013년 기준 2억6000만 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절대빈곤 인구는 40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불만을 다스리는 게 중국의 최우선 과제다.
중국 정부의 카드는 제대로 된 도시화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빈민이 많고 일자리가 절대 부족한 빈껍데기 도시로는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중국이 이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탈빈곤과 고용 개선을 강조한 데는 출범 100년을 앞둔 중국 공산당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이 절박함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바로 사드다. 한국 관광 제한은 전체 그림의 귀퉁이일 뿐이다. 중국은 이미 관광, 유통업뿐 아니라 제조업에 포진한 외국 기업을 서서히 몰아내고 자국 기업을 끌어들임으로써 기반이 튼튼한 도시를 만들고 질 좋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모델에 시동을 걸었다. 수축과 적응(atrophy and adaptation)에 익숙한 공산당은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이런 방식의 내수경제 육성이 해답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롯데마트가 문을 닫으면 일자리가 줄어드니 중국에 손해라는 시각은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한 것이다. 우리도 각종 규제로 자국 기업을 보호한 정부 주도 성장기를 거쳤다. 한국 기업이 나간 자리는 공산당의 말을 잘 듣는 중국 기업으로 대체될 게 뻔하다.
우리 내부에도 위험을 직감한 학자들이 1년 반 전에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이 만든 부품을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조립해 재수출하는 분업구조가 깨진 상황인 만큼 중국 의존형 경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정부도 공감했지만 정치권에 발목을 잡혀 한 걸음도 떼지 못한 것은 다 아는 얘기다.
한국 길들이기 계속될 것
시진핑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맞서 ‘강한 중국’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중국 우선주의(China first)의 대결 구도에서 등이 터질 새우가 여럿이다. 중국 수출에서 부품 의존도가 낮아진 한국은 좋은 먹잇감이다. 한국 길들이기는 이제 시작이다. 우리 정부가 중국의 통상 행보를 일시적인 사드 보복으로만 본다면 기업은 제2, 제3의 보복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