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차량으로 20여 분 떨어진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은 베이징의 주요 관광 명소다.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방문객의 줄이 길게 꼬리를 문다. 대부분 중국 각지에서 관광에 나선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로 박물관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박물관 안팎의 전시실 수십 곳에는 전투기와 전차, 미사일 등 수천 점의 무기 실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중국의 첫 원폭과 수폭실험에 사용된 핵무기도 볼 수 있다. 과거 중국 대륙을 침공한 일본제국주의 군대와의 주요 전투를 실감나게 묘사한 전시물도 눈길을 잡아끈다. 올해로 창군 90주년을 맞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역사가 담긴 사진과 문서도 수만 점이 소장돼 있다. 주로 외세의 위협에서 중국 공산당과 인민을 지켜낸 역사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내용이다.
6·25전쟁도 중국군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일부다. 중국군 참전 부대들은 관련 기록을 모아 별도 전시실을 만들어 영광의 전사(戰史)로 기념한다. 2011년 7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한중 국방장관 회담차 방중했을 때 중국군 당국은 베이징 외곽의 6·25전쟁 참전부대로 안내하기도 했다. 중국의 초중고교생은 역사시간에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으로 배우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부주석 때인 2010년 “(6·25전쟁 참전은)침략에 맞서 평화를 지킨 정의로운 전쟁이고, 북한과 힘을 합쳐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미국 등 외세의 ‘조선반도 침공’을 함께 물리친 혈맹적 유대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이 20년이 넘게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하면서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사반대하는 진짜 속내를 알 것 같다. ‘맹방(북한)’의 핵무장은 봐줄 수 있지만 미제 요격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한국은 손을 보겠다는 저의가 감지된다.
사실 중국의 대한(對韓) 사드 보복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사드 배치를 결정한 한국을 전방위로 옥죄는 중국을 보면서 김정은은 쾌재를 불렀으리라. 핵보다 더한 무기로 한국을 겁박해도 중국이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얻었을 것이다. 올해로 수교 25주년을 맞은 한중관계의 전략적 한계를 확인한 것도 큰 성과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 수위가 높아질수록 김정은은 더 대담하고 치명적인 대남 도발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반면에 최대 피해자인 한국은 중국의 본색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양국의 경제 문화적 관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북한의 핵 개발을 두둔하고, 한국의 사드를 몰아세우는 중국을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중국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국의 대중(對中)전략은 처음부터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핵과 한국의 사드에 대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는 향후 한반도 정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는 ‘냉정’과 ‘절제’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자위적 조치에 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중국의 모습은 ‘오만한 대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중국이 김정은의 군사적 모험이나 북한의 급변 사태로 대한민국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면 누구의 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한국이 대중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 생존전략을 서둘러야 한다는 경고가 아닐까.
중국도 맹목적인 북한 편들기를 중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평양 김씨 일가의 3대에 걸친 ‘핵 폭주’를 수수방관한 중국의 책임이 크다. 북한 핵 문제를 역내 대미 패권경쟁의 지렛대로 삼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로 중국 지도부가 생각했다면 완전한 오판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가속화하면서 중국의 ‘안보 딜레마’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을 방관하면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얘기다.
중국은 이제라도 구시대적인 북-중관계를 청산하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북한 비핵화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이 역내 리더 국가로 인정받고, 한중 양국의 평화 번영을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대북제재를 ‘시늉’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을 중단하는 게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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