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베네수엘라에서 크루아상과 브라우니를 만든 제빵사 4명이 체포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밀가루의 90%를 바게트 같은 값싼 빵에 쓰도록 하고 있는데 이들이 규정을 어기고 고급 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경제 파탄에 2016년 400%가 넘는 살인적 인플레로 베네수엘라 지폐가 화장실 휴지로 사용되는가 하면 도둑도 훔쳐가지 않는다. 식량 부족으로 국민 체중이 감소하면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이름을 따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남미 사회주의의 낙원’으로 불리던 베네수엘라의 비참한 상황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남긴 좌파 포퓰리즘의 유산이다. 1998년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차베스는 석유 기업을 국유화해 원유 판매 수입을 독점하고 이 돈을 무상복지에 투입했다. 국민들은 땅만 파면 돈이 나오는 줄 알았고 차베스는 체 게바라를 이은 남미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짧은 황금기는 2013년 유가 폭락과 함께 끝났다.
▷노조운동가 출신 마두로 부통령은 2013년 차베스가 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후계자로 지명됐고 곧 이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두로 치하에서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마이너스 10% 성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격 통제로 생필품은 바닥났고, 치안은 완전히 붕괴했다. 성난 민심은 2015년 총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야권연대 민주연합회(MUD)를 선택해 의회가 야당으로 넘어갔다.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3월 30일 의회의 입법권한을 대행한다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렸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대신해 대법원이 별도로 지정한 기관이나 산하 헌법위원회가 법을 만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삼권 분립을 침해했다는 국내외 비판이 들끓자 마두로는 판결의 무효화를 요청한다고는 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선출된 권력인 최고통치자가 포퓰리즘에 기대어 법치를 묵살할 때, 선출되진 않았지만 민주적 제도인 사법부는 이를 견제할 책무가 있다. 민주적 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할 경우 포퓰리즘의 끝이 독재체제로 귀결될 수 있음을 베네수엘라 사태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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