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전문기자의 맨 투 맨]중국은 ‘中國’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5일 03시 00분


롯데백화점의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중국어 입간판.
롯데백화점의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중국어 입간판.
이형삼 전문기자
이형삼 전문기자
관(官)이 주도하는 보복은 웬만큼 예상했다. 롯데마트 문을 닫고 한국 여행을 막아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소비재와 문화상품 탄압은 소비자의 호기심과 금단현상을 키울 뿐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고향 시안(西安)에 어마어마한 반도체공장을 세운 삼성전자, 베이징 시가 대주주인 중국 기업과 50 대 50으로 합작한 현대자동차는 털끝 하나 못 건드리지 않았나. 글로벌 분업 체계의 핵심 일원이자 수입 대체를 위한 선진기술 전수에 목맨 중국이 체면치레 이상으로 ‘오버’하긴 힘들 것이다.

놀라운 건 민간의 반응이다. 태극기 찢기, 한국 제품 훼손 퍼포먼스, ‘한국인과 개 출입 금지’, 호텔 바닥의 ‘한국인 밟아 죽이자’ 카펫에선 한풀이의 광기가 묻어난다. 상대는 일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공유한 한국이다. 한국에 들여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탐지 범위가 손바닥만 하다는 것, 산둥 반도와 랴오둥 반도에 한반도까지만 때릴 수 있는 DF-15 단거리미사일 수백 기가 실전 배치돼 있다는 걸 아는 중국인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무지하다 해도 해묵은 구원(舊怨)이 없고서야 어떻게 이렇듯 서슬 퍼런 혐한의 굿판이 벌어졌을까.


북한 민주화 운동가 김영환 씨는 2012년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타와 전기고문을 당하며 114일 동안 강제 구금됐다. 그에게서 낙관적인 전망을 들은 건 뜻밖이었다. “우리의 1970년대식 국가주의가 중국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비현실적이고 감정에 휘둘린다. 혐한 사태도 불씨는 정부가 댕겼지만 일부에서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통제 불능이 됐다. 하지만 오랜 세뇌교육 탓에 철저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과 달리 사드는 자신들이 잘 모르는 사안이라 이런 정서가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도 ‘내재적 접근’으로 분석했다. “위에선 조용하게 지시를 내려보내도 극렬하게 흔들어대는 배타적 민족주의자들이 있지만 소수다. 내가 대사로 있던 2, 3년 전만 해도 혐한 현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지금도 젊은층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오히려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하면 해결되리라 본다.”(권영세 전 주중 대사) “중국인에겐 감정이 한쪽으로 확 쏠리는 성향이 있고 정권은 왕조시대부터 이것을 정치에 이용했다. 정부가 성장통에 따른 국민 불만을 억누르려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있지만 ‘감정 쏠림’은 지속되기 어렵다.”(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중국과 다방면에서 일상적으로 교류하다 보니 종종 잊고 지내는 게 있다. 이 나라가 적어도 우리 기준으로는 정상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8800만 공산당원이 지배한다. 공산당 세포조직이 향촌(읍면) 단위까지 뻗어 있어 중앙의 결정이 최하층 조직까지 일사불란하게 하달되면서 증폭된다. 문화대혁명 때도 가장 과격한 세력은 철없는 10대 홍위병들이었다. 정부가 어떤 이슈로도 국민을 총동원할 수 있는 극도의 권위주의 국가, 전근대와 탈근대가 공존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사드를 둘러싼 전방위 보복 조치, 외교부와 관영매체들의 오만한 행태는 대국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부패, 경기 침체, 빈부 격차, 소수민족 갈등 같은 내부 문제들이 끓어오르자 화살 끝을 슬며시 바깥으로 돌려놓은 측면이 있다. 불안감과 소심함이 엿보인다. 중국은 폐쇄적 대륙국가도 개방적 해양국가도 아닌, 소국(小國)도 대국(大國)도 아닌 어정쩡한 ‘중국(中國)’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이 나라가 정상 국가의 면모를 갖출 때까지 막연한 환상도, 섣부른 체념도 경계하며 기다리고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쉬운 것은 매끄러운 역할 분담이다. 가령 정치권이 “사드 배치는 국민과 동맹군을 지키기 위한 불변의 원칙”이라 못 박고 미국 의회보다 먼저 사드 보복 조치 규탄 결의안을 냈다면, 미국대사관 앞에서 연일 한미연합훈련 반대시위를 벌인 시민단체가 중국대사관 앞으로도 몰려갔다면, 서울광장의 태극기 부대가 적당히 자극적인 반중(反中) 구호 몇 개를 내걸었다면 대중(對中) 외교의 협상력을 높였을 것이다.

이런 든든한 뒷배 덕분에 부담을 던 우리 외교부가 선제적으로 “국내의 중국인, 중국 기업, 중국 자산을 보호하고, 과격한 반중시위나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부드린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말끝마다 ‘문명적 행동’ ‘문명적 법 집행’을 강조하는 중국에 누가 진짜 문명국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제3자에게도 누가 도덕적 우위에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시켰을 것이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
#중국#사드#배타적 민족주의자#감정 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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