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어느 모임에서 선배에게 들었던 얘기다. ‘근세기 아시아 3대 불가사의는 뭐냐’는 난센스 퀴즈였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첫째, 황금 사랑으로 유명한 중국인이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채택한 일이다. 둘째,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채택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평등 지향성이 강한 한국인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한 일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가’ 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수도’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20여 년 사이에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탈바꿈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일본은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 속에 우경화 경향이 가속화하고 있다. 원래 성향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한국은 어떨까.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고 법인세를 올리는 등 기업 때리기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중소기업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대기업이 표적이어서 4대 재벌에 초점을 맞춘 ‘정밀폭격’ 방침도 발표됐다.
물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특권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잘못이 있다면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기업 역시 ‘역차별’을 받을 이유는 없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은 기업을 미워하다 초점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지난해 도쿄 특파원을 지내고 돌아와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역사 문제가 아니라 자녀를 일본 대학에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진학 상담이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해도 미래가 안 보이는데 일본은 유례없는 취업 호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결단’한 부모도 적지 않다. 지금 국민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자녀들의 일자리와 미래다. 그리고 그 희망의 터전은 공공부문이 아니라 민간기업이어야 한다.
사석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신규 투자 때 정부의 ‘기업 정책’을 감안해 의사 결정을 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사실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겠다면 잡아둘 구실도 마땅치 않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앞으로 어떤 정권도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사라진 일자리와 소득, 세수를 정치인들이 보상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 수입하고 싶은 대통령 1위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던 2009년 1월 취임한 뒤 기존 경제정책을 전면 재검토했다. 해외 사례도 참조했다. 제조업 기반이 강한 독일과 일본은 위기에 강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은 조그만 위기에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 결과 나온 해법이 리쇼어링(reshoring)으로 불리는 기업 유턴 정책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일관되게 해외에 나간 기업들을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로 불러들였다. 이로 인해 113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됐다. 10%를 넘던 실업률은 4%대로 떨어졌다. 오바마 정책 뒤집기에 바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리쇼어링’만큼은 확대 강화하고 있다. 외국 기업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영국에서는 대놓고 ‘조세 회피처’가 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부활을 이끈 아베 신조 총리도 ‘기업 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부터 출발했다. 한국의 일자리 해법이라고 다를 수 없다.
누구든 집권에 성공하면 두세 달 여유를 갖고 공약과 입법안을 재검토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잘못된 설계도로 집을 짓다 바로잡으려면 몇 배 힘들다. 경제 공약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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