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C서 아웃… 힘빠진 배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트럼프, 참석대상서 직접 제외… 反이민 등 정책 혼선 책임 물어
합참의장 등 복귀… NSC기능 정상화… 외교안보 중심축 맥매스터로 이동

미국의 유명 정치 코미디 쇼인 NBC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풍자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아닌 ‘악령’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있다. 해골 가면과 검은 망토를 두른 이 악령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트럼프 대통령(앨릭 볼드윈 역)에게 “오늘 많이 웃겼으니 이제 내 자리 좀 비켜줘”라고 하대한다. 트럼프는 깍듯하게 “네, 대통령님. 제 자리로 가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트럼프 대통령을 조종하는 악령으로 묘사될 만큼 국정 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고문(64)이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전격 배제됐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5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배넌의 NSC 배제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날 백악관이 공개한 새로운 NSC 조직도에도 배넌의 이름은 빠져 있다.

핵심 실세였던 배넌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인 올 1월 말 NSC 내 장관급 회의의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 경력이 전혀 없고, 극우 인터넷 매체인 ‘브라이트바트 뉴스’를 설립한 이력 등으로 부적격자란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도 배넌의 NSC 참여에 대해 “국가안보의 정치화”라고 맹비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힘을 실어줬다.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사임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후임으로 육군 중장 출신의 허버트 맥매스터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면서 배넌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미 정부 관계자는 AFP통신에 “맥매스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NSC 구성의 재량권을 요구했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실질적 권한을 쥐게 된 맥매스터가 NSC 운영에 방해가 되는 배넌의 배제를 결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언론들은 ‘맥매스터의 승리’라고 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국가정보국장(DNI)과 합참의장을 NSC 장관급회의의 당연직 위원으로 복원시켜 NSC 기능을 정상화했다. 국가정보국장과 합참의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까지 당연직 멤버였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초청 대상자’로 강등됐었다.

주요 국가안보 현안들이 논의되는 NSC 장관급회의에서 배넌이 배제됨에 따라 핵심 국정 현안에 대한 접근권도 상당 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미 정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 그동안 배넌 주도로 추진된 정책들 중 난항을 겪는 사례가 늘어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 배넌과의 ‘거리 두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많다.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장녀 이방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배넌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건의해 배넌이 NSC에서 축출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쿠슈너는 주요 정책에 대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강조해 과격한 정책 추진을 선호한 배넌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배넌의 ‘친(親)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성향도 NSC 배제를 초래한 배경 중 하나라고 전했다.

배넌의 NSC 배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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