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대통령중심제 개헌’ 국민투표… 가결땐 2029년까지 집권 가능
부결돼도 권력연장 계속 시도할듯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3)이 ‘술탄의 면류관’을 쓸지 결정하는 개헌 국민투표가 16일 치러졌다.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 에르도안에게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걸 골자로 하는 이번 개헌안을 두고 유권자 5500만 명이 전국 16만7000개 투표소에서 찬성·반대표를 던졌다. 개헌안이 가결되면 에르도안은 2029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가지게 된다.
이번 투표는 지난해 7월 쿠데타 실패 이후 9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국가비상사태하에서 치러졌다. 에르도안과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은 테러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대통령제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은 투표 전날인 15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애국심으로 찬성에 투표해 달라”고 독려했다. 그는 최소 찬성 55% 이상으로 승리할 거라고 자신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개헌안이 에르도안의 권위주의를 더욱 강화시켜 터키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고 호소했다. 의원내각제 시절 총리를 맡은 2003년부터 치면 에르도안이 26년간 권좌에 앉게 돼 사실상 술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CHP 대표는 15일 수도 앙카라 유세에서 “찬성표를 던지면 국가가 위험해진다”며 “(터키 인구) 8000만 명이 한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브레이크도 없다”고 말했다.
에르도안은 재외국민 유세를 막은 독일을 ‘나치’라고 비난하는 등 유럽과의 갈등을 불사하면서 투표 승리에 ‘올인’해 왔다. 개헌안이 가결되면 터키는 2019년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면서 새 대통령에게 5년 중임제를 적용한다.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된 에르도안은 3연임을 금지한 터키 헌법에 따라 재선에 성공해도 2024년까지만 집권할 수 있는데 개헌에 성공하면 2029년까지 재임할 수 있게 된다.
18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번 개헌안은 기존 총리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대통령에게 몰아주도록 했다. 대통령은 의회 동의 없이도 부통령과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 15명 중 12명도 대통령 몫이다. 국가 예산 편성권과 국회 해산권을 거머쥐고, 대통령의 명령이 법령에 준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대통령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는 조항도 바뀌어 에르도안이 공동 창당한 AKP로의 당적 복귀도 가능해진다.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해줄 친여 성향 의회 구성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헌안이 부결되면 차기 총선에서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에 힘이 실리겠지만 에르도안의 권력은 여전히 굳건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르도안이 국가비상사태를 계속 연장해서 비슷한 개헌안을 또다시 국민투표에 부치는 등 권력을 유지할 다른 방안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개헌안이 부결되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막판까지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이 펼쳐진 가운데 이달 들어 찬성표가 미세하게 우세했다. 3월 치러진 14차례의 여론조사에서 반대(8차례)가 찬성(6차례)을 앞섰지만, 4월 시행된 여론조사 15차례에서는 찬성(10차례)이 반대(5차례)를 앞섰다. 대부분 오차범위 내이고, 부동표가 10%가 넘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지난달 27일∼이달 9일 치러진 재외국민 투표 출구조사에선 찬성 42%, 반대 58%였다. 투표 결과는 한국 시간 17일 새벽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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