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6, 7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가 얘기한) 한국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전체였다”며 “(시진핑 발언을) 10분간 듣고 난 뒤 (북한을 다루기) 쉽지 않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정상회담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에 공개한 건 분명 경솔했지만, 시 주석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이 “고구려의 영토를 볼 때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현재 우리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차분한’ 대응과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시진핑 발언 사태를 전략적 차원에서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의 대한반도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핵과 사드(THAAD) 문제 해결은 물론 통일까지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쉽지 않겠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간주한다. 북한이 순순히 핵을 포기하면 좋겠지만, 중국의 강력한 제재로 인해 북한이 붕괴라도 하게 되면 완충지대가 사라진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북한이 아니라 한국(한반도) 전체’를 중국의 일부로 생각하기에 사드 배치에 그토록 반대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상 중국의 영토 주권이 미치는 한반도에 미국의 전략무기가 들어오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주권적 위협에 해당한다. 결국 ‘중국 변수’를 극복하지 못하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국이 한반도를 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그릇된 사고는 한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한미동맹을 잘 활용해야 한다. 현 시점에 지구상에서 중국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러한 미국과 동맹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제와 방어를 넘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그릇된 편견을 제어하면서 건설적 역할을 유도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이 ‘좋은 나라’여서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동북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힘이 세고,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보이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활용하는 용미론(用美論)의 전략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스스로 단결하고 힘을 키우는 자강론(自强論)이 필요하다. 이번 시진핑 발언 사태의 또 다른 의미는 시 주석의 귓속말에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솔깃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한국을 자신의 영토로 생각하든 말든 중국이 북핵만 해결해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미국이 했다면 문제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압박을 가하다가 북한이 무너졌을 때 한국은 급변사태를 통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국의 대응이 수준 이하라고 판단할 경우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반도 분단 지속을 미국에 제안할 수 있다. 미국 역시 한미동맹을 통해 통일을 이루는 것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할 경우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중 양국의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의해 분단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지속하면서도 한반도와 부속 도서에 대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무서운’ 나라라는 인식이 미중 양국 모두에 심어지지 않는 이상 한국은 한반도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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