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김정은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김정은은 봉건시대 왕이다. 초법적 존재다. 그런 점에서 대단히 취약한 체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만용과 아집으로 묘지를 팔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핵무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추면 동북아 정세를 일거에 역전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거라 믿어 왔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中에 배신감 느끼고 있을 北

북핵 문제를 외교의 최우선으로 두고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강해 보인다. 국무부 국방부에 흩어져 있던 대북 관련 기능과 조직들까지 통폐합 중이라고 한다. 백악관에서는 맨 왼쪽엔 대화(평화협상), 맨 오른쪽엔 전쟁 시나리오까지 포함한 모든 실행 플랜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시용 ‘쇼’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북 정책 바탕에는 “북핵 저지를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을 타격해도 좋다”는 미 국민들의 과반수 지지(65%·퓨리서치센터)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중국의 태도가 달라진 데는 녹록지 않은 내부 상황 탓이 크다. 고도성장이 멈추고 중저속 성장시대를 맞고 있는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 1인 독재를 꿈꾸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을 국내용으로 이용하는 데 방점을 찍어 왔다. 이번 회담도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세 폭탄 부과에서 벗어났음을 최고 성과로 삼아 대국민 홍보 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언제든 다시 칼을 빼들 수 있다는 것을 시 주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예전 같은 ‘대북 제재 쇼’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의 중국 봐주기는 ‘북핵에 대처하는 걸 봐가며 하겠다’는 점에서 조건부 유예다.

“어떤 짓을 해도 중국은 우리를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온 김정은은 원유 공급을 축소하고 자신에게 외과 수술식 타격까지 용인하겠다고 하는 중국의 변화된 태도에 배신감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딜레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도한 핵개발과 핵무장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 국방부는 김정은이 집권 후 5년간 미사일 개발에만 1조268억 원, 핵무기 개발에는 1조2000억∼1조7000억 원을 썼을 것이라 추정한다. 5년 동안 발사한 탄도미사일만 해도 1100억 원어치다. 가랑이가 찢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핵을 안고 스스로 자빠질 날도 머지않았다. 공포 정치는 반드시 권력의 경직화를 수반한다.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정찰총국과 보위성의 충성 경쟁이 외부에 드러났다. 황병서, 최룡해, 김원홍 등의 ‘너 죽고 나 살기’식 권력투쟁은 언제든 정권을 흔들 수 있는 뇌관이다.

한미일 팀워크 깨면 안 된다

북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한미일의 압도적 무력 앞에서 김정은은 일단 꼬리를 내렸다. 도발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게임의 룰이 바뀐 상황에서 고민이 깊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ICBM 개발로 미국과 일본을 북핵 당사자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ICBM의 저주다.

대화와 국제 제재라는 옵션에 군사적 옵션들이 추가됐다는 것은 큰 변화다. 남북·북-미 간 대화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군사적 압박, 국제적 제재만이 대화의 주도권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북과의 대화보다 한미일 간의 내부 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일의 북핵 대응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막기 위해서는 사드 배치 연기 같은 한미일 간 팀워크를 한국이 먼저 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김정은#북핵 문제#코리아 패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