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지난 60년간 프랑스 정치를 지배해온 보수와 진보 양대 주류 정당 후보들이 탈락하고 39세의 중도 성향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반유럽연합(EU), 반이민의 기치를 내건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48)가 각각 1위(24.01%), 2위(21.30%)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이 현상을 이웃 나라 영국 언론은 “새로운 프랑스 혁명”이라고 불렀다.
7일 결선에서는 마크롱이 르펜을 누르고 당선될 것으로 여론조사기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가져온 미국과 유럽의 극우 열풍은 제동이 걸리고 EU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프랑스 대혁명과 68혁명으로 세계사에 주도적으로 기여한 프랑스는 사상 최연소 개혁 성향 대통령의 출현으로 국내 정치의 쇄신과 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21세기 세계 정치의 지각 변동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여론조사와는 달리 르펜이 당선될 경우 프랑스는 국경 폐쇄를 포함해 강경한 반이민정책으로 선회하고 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추진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전 세계가 이 선거를 주목하는 이유다.
마크롱은 누구인가. 프랑스판 고등고시라고 할 수 있는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으로, 다년간 투자은행가로도 활약한 전형적인 프랑스 엘리트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의 기득권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으로 일할 때 일요일과 심야영업 제한을 푸는 ‘마크롱법’을 관철하고 사회당 정권의 지지 기반인 노조와 맞서 노동법 개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계란 세례와 같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선거 경험이 전무한 그가 지난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앙마르슈(전진)’란 ‘정치 운동’을 창설했을 때 누구도 1년 후 그가 양대 정당의 아성을 뚫을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변화를 갈망하는 민심을 읽을 줄 알았고 프랑스 국민은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사회당 정권의 각료를 지냈지만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언한 그는 부유세 폐지, 근로자와 기업의 세금 감면, EU 강화 등 미래지향적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런가 하면 한때 선두주자였던 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하원의원 시절 부인을 허위 채용해 세비를 횡령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락한 지지율을 만회하지 못해 20.01%의 득표로 결국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민심이 얼마나 냉정한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피용은 바로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알랭 쥐페 등 다른 우파 중진들도 마크롱 지지를 호소했다. 이념보다는 자유, 평등, 박애로 집약되는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다. 이를 ‘공화전선’이라고 한다. 이것이 프랑스의 힘이다. 한편 노선 갈등으로 내홍에 휘말린 집권 사회당은 브누아 아몽 후보가 6.35%를 얻어 탈락하면서 궤멸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시대 변화를 외면하고 자기 쇄신이 없는 정치인과 정당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엄혹한 교훈을 주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을 치르고 있는 우리 정치권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제언이 있다. 프랑스처럼 후보가 난립하는 우리 대선도 다음 선거부터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매번 논란이 되고 있는 후보 단일화 문제를 국민의 선택에 맡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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