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긴장에 휩싸일 때면 늘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분쟁 해결사’를 자처하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료가 조지아 주에 있는 카터의 자택을 찾아 새 대북 정책을 브리핑하고 ‘이번엔 나서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북 특사로 나서길 희망하는 카터에게 자제를 당부한 것이다. 카터는 1994년 북핵 위기 때 평양을 방문해 북-미 협상의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독선적인 행동을 두고 뒷말이 적지 않았다. 이후 2011년 방북 땐 한미 양쪽에서 ‘불청객’이란 눈총을 받았다. 북한에 편향된 그가 과연 공정한 중재자 자격이 있는지 의심도 받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만큼 한미 동맹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美관료들의 게릴라식 항명
카터는 1977년 취임 직후부터 대선 공약이었던 주한미군 철수를 완고하게 밀어붙였다. 그의 강력한 철군 의지는 많은 정부 관료를 윤리적 갈등에 시달리게 했고, 대통령과 관료들 간 이견은 실력 대결 양상까지 보였다. 관료들은 공적으론 발설하지 못했지만 사석에선 노골적으로 카터의 정책을 비판했다.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은 ‘대통령 명령엔 복종하되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중 대응 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야전 군인들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언론과 인터뷰한 주한미군 참모장은 항명으로 간주돼 즉각 본국으로 소환됐다. 급기야 북한이 탱크와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이 무너졌다는 정보기관의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는 의회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카터는 훗날까지 “정보기관이 보고서를 조작했다”며 괘씸해했다.
카터의 고집은 ‘퇴로’를 찾기 위해 마련된 한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독불장군 카터와 철권통치자 박정희의 1979년 6월 대면은 “도저히 동맹국 정상 간 회담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 배석자는 회상한다. 결국 한국의 인권 개선을 조건으로 철군을 재검토한다는 결론이 났지만, 카터의 무리한 철군 정책의 여파로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은 한동안 실종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
‘힘의 외교’ 앞에 설 새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청구서를 불쑥 내밀어 양국 간 논란을 불렀다. 사흘 뒤 방송에 출연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답변에 앞서 내뱉은 한마디에선 묘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발언, 여기에서 카터 행정부 시절 관료들의 딜레마가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중앙정치 무대에선 무명이나 다름없던 땅콩농장주 출신 카터처럼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도 공직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워싱턴 아웃사이더’다. 트럼프의 ‘힘의 외교’는 카터의 ‘인권 외교’ 못지않게 독단적일 것이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동맹이라고 해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며칠 뒤 취임할 우리 대통령이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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