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극우’서 정치중심부로… 르펜, 집권 문턱까지 ‘진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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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가능성 보인 ‘절반의 성공’… 43년전 아버지 출마땐 19만표
르펜, 1064만표까지 끌어올려
총선 겨냥 黨체제 정비 주력… ‘국민전선’ 당명부터 바꾸기로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후보(48)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7일 밤 조앤 제트 앤드 더 블랙하츠의 팝송 ‘I Love Rock ‘n’ Roll’에 맞춰 지지자들과 함께 춤을 췄다. 비록 이번 결선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1972년 창당 이래 가장 많은 1064만여 표를 획득하면서 득표율을 33.9%까지 끌어올린 데에 대한 자축이었다. 르펜 지지자들은 그의 상징인 파란 장미를 들고 몰려와 역대 최고 득표를 축하했다.

르펜은 이번 대선에서 극우정당의 집권 가능성을 한층 끌어올려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1974년 대선에 처음 출마했을 당시 19만 표에 그쳤던 국민전선은 43년 후인 이번 대선에서 1100만 표에 육박할 만큼 급성장했다. 아버지가 결선 투표에 진출했던 2002년 대선에서는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르펜을 격렬히 반대하는 전국 단위 시위도 거의 없었을 만큼 정당 이미지도 개선됐다.

르펜이 이번 대선에서 확보한 33.9%의 득표는 국민전선을 대중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든다는 목표에 성큼 다가선 결과라고 BBC는 평가했다. 르펜은 이번 대선으로 국민전선이 주요 야당으로 자리 잡았다고 자평하며 당의 전면 재정비를 통해 6월 총선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전선의 현 의석은 2석에 불과하지만 주요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를 제치고 결선 투표에 진출한 저력으로 의석수를 늘리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르펜은 우선 국민전선이라는 당명부터 바꿀 예정이다. 아버지 때부터 인종차별,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 반유대주의 등 극우 이미지가 강한 국민전선이라는 당명이 득표력 확장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정당 외연의 폭을 확대하는 데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르펜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기 위해선 당을 새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우리 운동의 근본적인 변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정치인인 르펜은 2022년 차기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당내에서도 마땅한 경쟁자가 없어 입지가 굳건하다. 만약 마크롱 정부에서 실업률이 더욱 악화되고 기업의 해외 진출로 인한 산업공동화 등 세계화의 부작용이 더 커진다면 반(反)유럽연합(EU),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 르펜을 향한 표심이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수 있다.


1차 투표 결과를 보면 국민전선의 전통 지지 기반인 프랑스 남부뿐 아니라 산업공동화가 진행된 북부와 북동부 지역에서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르펜은 노동자뿐 아니라 경찰 등 공무원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고, 청년 실업에 분노한 젊은층에 이어 35∼49세 유권자의 지지도도 상승세다.

르펜이 극우정당으로서의 확장성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차기 대선 승리의 관건이다. 대선 결선 투표에서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해 모든 주류 정당이 한데 뭉치는 프랑스 특유의 선거문화가 걸림돌이다. 르펜은 이번 선거에서 마크롱에 더블 스코어 가깝게 패하며 극우 정당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아버지 르펜도 2002년 결선 투표에 진출했지만 극우 집권에 거부감을 갖고 똘똘 뭉친 ‘공화국 전선’에 가로막혀 17.8% 득표에 그쳤다. 국민전선이 유럽의회 기금 30만 유로(약 3억7000만 원)를 불법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에 대한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프랑스 대선#마린 르펜#국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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