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한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국제협력 정상포럼’ 연설에서 “일대일로는 화평(和平)의 길을 건설하는 것으로 각국의 주권과 존엄, 완전한 영토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또 “일대일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어느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특정 국가의 사회제도와 발전모델을 수출하거나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가 지향하는 길로 ‘화평, 번영, 개방, 창신, 문명의 길’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시 주석이 화평과 불간섭을 강조한 것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선전 무대로 활용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사업 등에 투자할 중국의 실크로드 기금을 1000억 위안 증액해 3000억 위안(약 48조 원)으로 늘리고 ‘일대일로 녹색발전 국제연맹’도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세계 경제성장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전환기를 맞았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내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어도 나무 밑에는 그늘이 생겨 자연히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는 고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중국이 처음으로 일대일로 국제회의를 개최한 것은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서다. 201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2016년 G20 정상회의 개최에 이어 중국의 대외적인 위상 제고 및 영향력 확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일대일로 포럼은 APEC나 G20과 달리 중국이 주도해 개최한 국제회의다. 개막 하루 전인 13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7개국이 추가돼 전체 회원국이 77개국으로 늘어난 것도 중국의 대외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중국이 심혈을 기울인 이번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29개국 국가정상 및 정부 수반이 참석했다. 또한 130개국의 고위급 대표단 그리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70여 개 국제기구 수장 등 1500여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포럼에 주요 7개국(G7)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많은 정부 수반이 참석을 꺼리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선전의 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12일 분석했다. FT는 “유럽연합(EU) 중 정부 수반이 참석한 7개국은 동유럽 국가들이고 아프리카는 케냐 대통령이 유일한 주요 인물”이라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초청하려고 끝까지 공들였으나 재무장관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고 덧붙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4일 주중 EU 회원국 일부 외교관을 인용해 “정상포럼에 참석하는 EU 지도자들의 주요 목표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대일로 정상포럼은 쇼”라고 전했다.
인도는 특히 일대일로 사업이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고팔 바글라이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일대일로 사업 중 하나로 추진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을 언급하며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주권이나 영토 보전에 관한 핵심적 우려를 무시한 프로젝트를 수락할 수는 없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포럼 불참을 밝혔다.
일대일로에 대한 역풍은 중국 내부에서도 불어오고 있다. ‘미국의소리(VOA)’ 중국어판은 14일 일대일로가 효과 없는 투자와 지역 분쟁에 휘말리는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중국 관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 성(省)급 관료는 익명을 전제로 “일대일로 대상국이 빈곤국가일뿐 아니라 기초 인프라가 극히 낙후돼 있다”며 “이들 국가가 중국의 투자를 기대하고 있지만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때로는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 자료에도 지난해 일대일로 정책 대상 국가에 대한 중국의 대외 직접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2% 하락했고 올해도 최근까지 전년 대비 18% 하락했다고 전했다.
VOA는 따라서 일대일로 정책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유럽 부흥 원조계획인 마셜플랜처럼 경제적 목적보다는 지정학적 목적이 훨씬 큰 ‘중국판 마셜플랜’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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