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P 씨는 요즘 한시름 놓았다. 올해 초 소방 당국이 강제 폐쇄한 공장을 지난달 중순부터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낸 20만 위안(약 3260만 원)의 과태료 외에도 이행해야 할 지적 사항이 10개가 넘지만 지방 정부는 슬그머니 기계의 봉인을 풀어줬다. 지난해 9월 느닷없이 수출길이 막혔던 L사도 지난달부터 파트너들이 수입 재개를 통보해 옴에 따라 해고한 중국인 직원 3명을 다시 채용하고 업무를 재개했다.
중국, ‘조용한 탈출’ 원해
지난해 7월 시작된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이제 사실상 해제됐다. 여행과 무역은 물론 한류까지 제재는 하나하나 풀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시각이 다른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在)중국 기업인들은 중국의 태도 급변은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지난달 중순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 회담에서 새 방향을 잡았음에 틀림없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좀 더 깊게 파고든다. 경제 보복의 1차 피해는 중국이 더 크다. 중국 내 공장을 폐쇄하면 중국인 근로자들이 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무역 역시 일방적 이득이란 없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의 가장 큰 손해는 국가 이미지 추락이었다고 지적한다. 친선혜용(親善惠容·친밀 선린 혜택 포용)의 외교 기조가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망나니인 북한을 감싸고 되레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난관에서 조용히 빠져나가고자 한다. 방법은 ‘정지안폐지안(睜只眼閉只眼)’이다. 보고도 못 본 척 상대의 잘못이나 결점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지혜다. 사드는 시 주석이 앞장서 “배치 절대 불가”를 외친 사안이어서 중국 정부가 보복을 공식 철회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한국이 사드를 철회하지 않아도 못 본 체하며 경제 보복을 풀고자 한다. 보복을 시인한 적이 없으므로 슬그머니 풀어주면 그만이다.
문제는 한국의 새 정부다. 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사드 배치 절차의 문제점을 들어 재검토를 주장했다. 배치하든 안 하든 국회 비준동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국내 문제일 뿐이다. 국회의원 다수가 사드를 비준했다고 중국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새 정부가 국회 비준을 들어 사드 강행을 공식화한다면 중국은 또다시 보복의 칼을 빼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정치와 외교 분리하라
중국에서 가게 간판을 가리는 가로수를 자연스레 제거하는 방법은 나뭇잎이 떨어진 늦가을에 몰래 제초제를 주사하는 것이다. 나무가 고사(枯死)하더라도 바로 베어내자고 하면 안 된다. 누군가 고사목 방치 민원을 제기할 때까지 기다려야 나무를 고사시켰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로수 담당자가 식재(植栽) 비용을 걱정할 때 대신 심어주겠다고 하면 그 역시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가로수 잎이 무성한 여름에 화난다고 바로 베어버리면 이는 담당 관리의 체면을 고의로 깎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은 엄청난 벌금이나 징역형이다.
사드는 한중 사이의 이파리 무성한 가로수다. 당당하고 명쾌한 것보다 후환이 없도록 조용히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 문 대통령은 사드 국회 비준은 잊는 게 좋다. 그것은 시 주석을 더 난처하게 만드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뜨거운 감자’ 사드는 식어 문드러질 때까지 가만히 놔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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