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의 아메리카 견문록] 비판했던 힐러리 VS 비판받는 힐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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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선 재도전설(說) 불 지핀 힐러리 클린턴 대선 패배에 대한 진단과 반성을 제대로 했을까?

1969년 대학 졸업식의 학생 대표 클린턴은 ‘기성 정치권 비판’, 2016년 대선에 나선 클린턴은 ‘기성 정치인’으로 비판 받아

모교 졸업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당한 닉슨에 비유
미 정치권과 언론, ‘클린턴 대권 도전 3수’ 가능성에 촉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70)은 1969년 3월31일 미국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 졸업식에서 1870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생대표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기성정치권이 가져온 신뢰의 파탄을 비판하면서 “이제 우리의 과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로서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설 직후 그에겐 언론의 인터뷰와 TV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정치인 클린턴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그로부터 48년 만인 지난 26일 모교 졸업식 연사로 나섰다. 파울라 존슨 웰즐리대 총장은 클린턴 전 장관을 소개하면서 “미국 주요 정당 최초의 여성 대선후보인 그의 수많은 ‘최초’ 수식어는 1969년 최초의 학생 연설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존슨 총장이 “그는 지난 대선에서 (선거인단 투표는 졌지만) 일반 총득표는 이겼다”고 말하자 큰 함성이 커지기도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약 30분 간 연설에서 40여 년 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거론하며 “당시(1969년) 우리(웨즐리대 학생들)는 한 남성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분노했는데, 그는 (나중에) 자신을 조사하던 인물(법무부 장관)을 해임한 뒤 탄핵을 받아 불명예 속에 물러났다”고 말했다. 또 “권력을 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만들고 그런 사실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는 자유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조짐이 될 수 있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정권들이 자행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클린턴 전 장관이 48년 전 학생연설이 기성정치권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번 졸업 축사는 닉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별도 성명까지 내고 “클린턴 전 장관이 왜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는지를 재확인시켜준 연설”이라며 “늘 똑같은 정파적 주장 대신 (선거 패배에 대한) 각성과 자성을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도 “졸업 축사가 (트럼프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고 비꼬았다. 반면 워싱턴포스트(WP)는 “클린턴 전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는 (연설을 통해) 충분히 알게 됐다. 늘 그랬듯이 그(클린턴)의 그 다음 행보가 궁금할 따름”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언론은 “클린턴 전 장관이 2020년 대선 재도전의 끈을 놓지 않은 것 같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CNN방송은 28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민주당 소속 람 이매뉴얼 미국 시카고 시장(58)에게 “만약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로 다시 나선다면 민주당에 좋은 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이매뉴얼 시장은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아직 중간선거(2018년)도 안 치르지 않았다. 클린턴 전 장관이 (출마 여부를)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에 대해) 언급하는 건 곤란하다”고만 대답했다. 그러나 CNN 앵커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이매뉴얼 시장은 “(그건) 좋은 질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중요한 건 내가 클린턴을 좋은 후보라고 생각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클린턴 본인 스스로 출마하고자 하는지의 여부”이라며 여전히 즉답을 피했다.

지난 대선을 지켜본 기자가 정말 궁금한 건 ‘클린턴의 재출마 여부’보다 ‘클린턴 스스로의 패인(敗因) 분석’이다. 그동안 클린턴 전 장관은 낙선의 요인에 대해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포함한 여성 혐오 현상 △러시아 및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선거 개입 △선거 막판 미 연방수사국(FBI)의 e메일 스캔들 추가 수사 결정 등을 꼽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론과 관련해서는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포괄적으로 대답할 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1969년 웨즐리대 졸업식에서 최초의 학생대표 연설을 했던 힐러리는 기성 정치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선 ‘워싱턴 기득권 세력이자 부정직한 정치인’이란 이미지 때문에 ‘아웃사이더’(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밀려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 도전 3수’를 결심하려면 그 전에 ‘왜 내 자신이 ’내가 비판하던 기득권 정치인‘이 돼버렸는지, 또는 왜 그렇게 국민 눈에 비췄는지’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뉴욕=부형권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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