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엔인권이사회, 독재정권에 눈감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헤일리 “인권유린국가도 이사국 돼”… 베네수엘라-쿠바 등 진출 비판
틸러슨도 “상당한 개혁 필요”
전문가 “中-러 등 인권 취약國 겨냥… 인권을 외교지렛대 삼으려는 포석”

“지난달 미국 상원에선 ‘미국이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계속 잔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미국은 당연히, 그리고 매우 강력히 인권을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미국)는 UNHRC가 실제로 인권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독재정권의 잔혹성을 은폐해주는 전시장에 불과한 것 아닌지 하는 의문이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3일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UNHRC는 (독재정권의) 잔혹성을 은폐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UNHRC의 한계를 강력히 비판하고, 이사국 선출 방식의 전면 개편 등 대대적 개혁을 주문했다. UNHRC는 47개 이사국으로 구성되는데 아프리카 13개국, 아시아 13개국, 중남미 8개국, 서유럽(북미 포함) 7개국, 동유럽 6개국 등 대륙별 배분 원칙에 따른다. 임기는 3년이고 연임한 나라는 1년을 쉬어야 그 다음 이사회 선거에 다시 나설 수 있다.

UNHRC는 ‘이사국은 인권 보호와 증진에 기여한 인권 모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헤일리 대사는 “세계 최고의 인권 유린 국가들도 UNHRC 이사국이 된다. 결국 UNHRC가 이 독재국가들의 잔혹성을 눈감아주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위대에 발포한 베네수엘라가 최근 UNHRC 이사국에 당선된 뒤 “우리(베네수엘라)의 인권에 대한 헌신을 국제사회가 인정해줘서 감사하다”는 발표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설명이다. 헤일리 대사는 “쿠바도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 권리를 여전히 억압하는 나라인데도 UNHRC에서 어떤 지탄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쿠바도 이사국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인권 보호에 가장 앞장서야 할 UNHRC가 (베네수엘라 등) 최악의 인권 침해를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헤일리 대사는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인권 문제를 평화안보 이슈와 연결지어 나가겠다고 밝혔다”며 “이번 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UNHRC를 방문해 연설할 때 (인권 이슈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대륙별 배분 원칙에 따른 UNHRC 이사국 선출 방식을 (인권 모범국들의) 경쟁 선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인권 유린국들의 당선을 근본적으로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UNHRC가 독재자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면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이란 (UNHRC의) 이상은 불신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3월 ‘프리덤 하우스’ 등 9개 국제인권단체의 공동 질의에 대한 회신을 통해 “미국이 UNHRC에 지금처럼 계속 참여하려면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UNHRC의 지속적인 반(反)이스라엘 입장 표명이나 의제 채택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유엔소식통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UNHRC에 대한 압박과 개혁 요구는 ‘인권’ 이슈를 자신들의 주요한 외교적 지렛대로 삼으려는 사전 포석의 성격이 짙다”고 해석했다. 궁극적으로 중국 러시아 등 인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른 강대국까지 겨냥한 외교전략이란 설명이다.

헤일리 대사는 기고문에서 UNHRC가 정치가 아닌 본연의 인권 이슈에 집중해 중요한 진전을 이룬 사례로, 시리아와 함께 북한을 들었다. 2013년 4월에 UNHRC가 역사적인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치를 결의하고, 그 후 COI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권고’라는 강력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유엔 안보리 의제로까지 상정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COI 설치가 결의됐을 때 북한의 대표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사국 연임 뒤 1년간 출마 제한’ 규정 때문에 UNHRC 이사국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 정부 안에선 이를 두고 ‘하늘이 도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UNHRC의 현행 구조에선 각 이사국의 정치적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인권 이슈에만 천착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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