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록스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뚜렷한 추락세
‘최고의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5년 전에 비해 18%포인트 ↓
‘초정파적 전직 대통령’에서 ‘정파적 대선후보(힐러리)의 남편’으로 인식됐기 때문
사상 첫 부부 대통령의 꿈 깨지면서, 부부 동반 추락의 수렁에 빠진 셈
미국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71)은 지난해 한 해 동안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70)을 ‘45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같은 해 4월 뉴욕 퀸스 플러싱의 한 연회장에서 아시아계 유권자들을 상대로 진행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를 직접 취재한 적이 있다. 40여 분의 연설이 끝나자 500여 명의 참석자 중 100여 명이 연단으로 몰려갔다. 그는 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줬다. 록스타의 콘서트에 온 느낌이었다.
클런턴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스타 대통령’ 중 한 명이다. 1950년 이후 집권한 이른바 ‘현대 미국 대통령들’의 인기 순위에서 존 F 케네디(35대), 로널드 레이건(40대)과 함께 ‘3강’을 형성해 왔다. 버지니아대 정치연구소가 2012년 전직 대통령 9명(1950~2000년 사이 재직)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고의 대통령은 누구인가’란 대국민 설문조사(복수응답)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과 함께 46%를 얻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3위는 케네디 전 대통령(41%). 4위는 이들 ‘인기 3강’보다 크게 떨어진 14%(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연구소가 5년 만인 올해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했다. 1위 케네디 전 대통령(53%), 2위 레이건 전 대통령(43%)에 이어 3위(28%)에 그쳤다. 연구소 측은 “5년 전과 비교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도가 18%포인트(46%→28%)가 떨어졌는데, 이탈한 지지표 대부분이 케네디 전 대통령(41%→53%)에게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부인인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난해(2016년) 대선에 뛰어들어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서 대국민 인기도가 급락한 것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도에도 그대로 투영됐다”고 덧붙였다. ‘초정파적 전직 대통령’에서 ‘정파적 대선후보의 남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특히 음담패설 동영상이나 여성 비하 발언 등 성(性)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잊고 싶은 과거’인 르윈스키 스캔들 같은 여성 추문 전력이 다시 부각된 것도 인기 하락의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4일 10여 명의 민주당 주요 관계자를 인터뷰한 결과 “클린턴 전 장관은 쓸데없는 스포트라이트(언론과 여론의 주목)를 받지 말고 백악관을 떠난 뒤 조용히 지내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길을 따르라”는 인식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최근 자신의 대선 패배 이유 중 하나로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무능과 부실까지도 거론해 당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과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직 참모들은 “요즘 그(힐러리)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의 ‘남 탓’ 발언은 민주당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더욱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한발 물러서서 ‘민주당의 다음 지도자’를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 처음 도전했을 땐 “유권자 여러분, 하나 사면 하나는 공짜입니다(Buy one, get one free)”라고 외치곤 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대통령급 능력을 가진 영부인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유머였다. 지난해 대선 유세에선 클린턴 전 장관이 같은 표현(“하나 사면 하나는 공짜”)을 쓰진 않았지만 미 언론들은 “힐러리가 당선되면 대통령의 남편도 대통령(빌 클린턴)이 되는, 역사상 최초의 ‘부부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고 전망하곤 했다.
그러나 클린턴 전 장관은 45대 대통령이 되지 못했고, 그 여파로 42대 대통령인 남편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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