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호주 일본과 함께 대표적인 미국의 군사동맹국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따른 대중 견제 전선의 일선에 필리핀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30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연합 군사훈련도 점차 중단할 것을 선언하면서 미국과는 거리를 두었다. 반면 중국에는 지금까지 두 번이나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는 등 이른바 ‘탈미친중(脫美親中)’ 경향을 보여왔다.
그런 필리핀이 남부 민다나오섬 마라위 에서 이슬람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반군 소탕 작전을 벌이면서 미국 특수부대의 지원을 받았다고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관과 필리핀 군부측이 밝혔다.
마라위에서는 지난 약 3주간의 무장 충돌로 최소 217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이중에는 정부군도 58명이 포함되어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러시아 방문 기간 중인 지난달 23일 민다나오섬에 60일간의 계엄령을 선포한 데 이어 이튿날 방문 일정을 중단하고 돌아와 반군 소탕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보여준 반미 성향에도 불구하고 반군 소탕이 ‘발등의 불’이 되자 미국에 도움의 손길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리핀에는 300~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이중 50~100명이 특수 부대원으로 주로 반테러 자문 및 훈련 지원 등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군부측은 미국의 지원은 ‘기술적이고 정보 관련’이라고 비군사적 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닐라 주재 미국 대사관도 “과거 해온 것처럼 두테르테 행정부의 반테러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고위급 관리들에게 통상적인 조언을 했다”며 자세한 작전 지원 내역을 밝히지 않았다.
AP 통신은 “9일 마라위 상공에서 필리필 헬기가 반군 세력에 로켓을 발사할 때 미 해군의 정찰기 P-3 오리온이 떠 있는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해 반군에 대한 로켓 발사 목표를 선정할 때 도움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필리핀 군은 독립기념일인 12일까지 마라위 탈환을 공언하고 있으나 반군은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민간인 인질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 저항하고 있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의 경제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미국의 ‘안보 우산’을 걷어찼다가 반 내전상태인 민다나오 사태가 벌어지자 미군의 도움을 다시 받게 된 상황은 한국을 포함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국가 안위와 존망이 걸린 안보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 특수 부대의 지원을 받아 반군 소탕에 나선 뒤 미국이나 미군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도 미-필리핀 군이 합작해 반테러 전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편하지 만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중국이 특수 부대를 보내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