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12층짜리 건물의 꼭대기에 위치한 펜트하우스. ‘금남(禁男)의 구역’인 이곳에 등록된 여성회원은 700명. 약 8000명이 연 회비 2250달러(약 253만8700원)도 기꺼이 내겠다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뉴욕 여성들의 인기 사교클럽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더 윙’(The Wing)의 이야기다. 공공관계 컨설턴트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언론보좌역을 맡았던 오드리 겔맨(28)이 친구 로렌 카산과 함께 이 공간을 창조했다. 둘은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다. 이제 여성들에게도 남성들처럼 사교의 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지난해 9월 더 윙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여성 비하 발언을 담은 테이프가 공개돼 ’공식 여혐남‘으로 찍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선거가 열리던 11일 밤 이들은 클린턴의 당선을 자축하는 파티를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순간에 파티장은 초상집으로 변해버렸다.
’여성들만의 클럽‘은 왜 필요했을까. 여성의 참정권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던 1900년대 초. 미국엔 5000개도 넘는 여성 클럽이 등장했다. 이들은 이 공간을 통해 여성 인권 신장과 해방에 관한 목소리를 냈고, 정치적 행동을 이어갔다. 시작은 186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자였던 제인 크롤리는 한 기자 만찬에서 여성들만 제외되는 일을 당한 뒤 뉴욕에서 활동하는 여성 언론인을 모아 그룹을 조직했다.
실제 더 윙은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많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된 1월 미 전역에서 ’여성 행진‘을 하며 트럼프의 여성 혐오적 행동들에 항의의 뜻을 표한 것도 그중 하나다. 현재 이 조직은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투자를 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얻었다. 회비를 낸 여성들은 퇴근 후 이곳에 들러 와인을 마시거나, 심리치료를 받는다. 나이 많은 여성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성에게 멘토링을 해주는 장면도 심심찮게 본다.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는 집회와 시위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창립자인 겔맨은 “설립초기 이 장소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좋은 곳(nice-to-have)이었지만,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곳(need-to-have)이 되었다”고 말했다. 카렌 블레어 센트럴워싱턴대 교수는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매우 유능한 여성들이 정치참여를 위해 힘을 모아왔다”며 “지금 또한 ’여성 클럽‘의 붐(boom)이 일어나고 있는 것”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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