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58명의 사망자를 낸 영국 런던 24층 그렌펠타워 아파트 화재의 불똥이 영국 정치권으로 옮아붙고 있다. 보수당 정부와 테리사 메이 총리의 무성의한 대응에 분노한 국민들이 메이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가운데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보수당 강경파마저 등을 돌림으로써 메이 총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내주 의회에서 불신임투표가 가결되면 ‘소프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메이 총리는 취임 1년도 안 돼 물러나야 한다.
이민자와 저소득층이 주로 모여 사는 그렌펠타워 아파트의 참사는 화재경보기 미작동, 스프링클러 미비 등 영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후진국형 인재(人災)였다. 영국 정부는 화재 발생 후 화재 원인이나 인명 피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실종자에 대한 정보 제공이나 생존자에 대한 주거 지원도 하지 못했다. 메이 총리는 생존자들과 만나려고 하지 않았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TV 진행자의 질문에 “끔찍한 사고였다”며 엉뚱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메이 총리는 보수당 정부의 긴축정책과 복지예산 삭감, 안전불감증이 이번 화재를 불렀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만 둘러보고 돌아갔다. 뒤늦게 생존자의 임시 거처인 교회를 방문했지만 시위자들의 거센 비난에 쫓기듯 현장을 떠나야 했다. 스타일은 당차고 멋있었지만 국가적 위기와 재난에 대처하는 리더십의 결핍을 드러냈다.
런던 화재는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을 연상시킨다. 당시 박 대통령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만나려 하지 않았고 세월호 분향소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 책임을 유병언 일가에게만 떠넘기는 듯한 태도로 공분을 샀다. 런던 화재는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능력과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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