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총리 집무실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와 나란히 선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 대표(47)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옆에 선 메이 총리는 웃고 있지만 지쳐 보였다. 승자는 포스터 대표였다.
메이 총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 조기 총선에서 하원 과반(326석)에 8석이 모자란 318석을 얻은 보수당의 메이 총리는 10석을 얻은 DUP의 지지가 없으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였다.
두 당은 이날 DUP가 보수당이 제출하는 핵심 법안들을 지지하는 대신 보수당은 DUP의 정책을 반영하고 혜택을 주는 ‘신임과 공급(confidence and supply)’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 따라 메이 총리는 예산안과 정부 입법계획을 담은 여왕 연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에 대한 DUP의 지지를 얻었다. 총리 불신임안이 하원에 상정되면 DUP가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그 대가는 돈이었다. 합의에 따라 포스터 대표는 북아일랜드 주민 1인당 530파운드(약 77만 원)어치의 혜택을 따왔다. 향후 2년간 북아일랜드에 10억 파운드(약 1조4500억 원)의 인프라, 보건, 교육 등 투자 약속도 이끌어냈다. 양도받은 법인세 권한을 활용하면 법인세를 더 낮춰 기업을 유치할 수 있고, 공항 면세 혜택을 줄 수 있어 관광객 유치에도 유리해졌다.
메이 총리는 8일 총선 패배 이후 48시간 내에 DUP와 협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18일이나 걸렸다. 포스터 대표의 깐깐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월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메이 총리가 “내가 끔찍하게 어려운 여자(bloody difficult)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했던 말을 빌려 “확실한 건 메이도 가장 힘든 상대를 만났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1970년 북아일랜드 남부 로슬리 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포스터 대표는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8세 때 경찰이던 아버지가 가족농장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쏜 총에 맞아 크게 다쳤다. 16세 때는 학교 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 IRA가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함께 탄 친구가 중태에 빠진 적도 있다. 퀸스대를 졸업한 그는 변호사를 거쳐 정치에 입문해 2015년부터 DUP 대표를 맡고 있다.
포스터 대표는 웃고 있지만 다른 지역은 “특정 지역에 지나친 특혜를 줬다”며 반발이 거세다. 팀 패런 자유민주당 대표는 “전국 학교와 공공보건서비스가 무너지고 있는데 메이 총리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원의원 10명에게 현금을 마구 던져주는 추잡한 일을 했다”고 비판했다. 웨일스 지역의 노동당 카윈 존스 의원은 “공정하게 써야 할 예산을 낭비하는 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북아일랜드는 30년 넘는 갈등 끝에 1998년 합의에 따라 민족주의자를 대표하는 신페인당과 연방주의자를 대표하는 DUP가 공동정부를 구성 중이다. 보수당 내에서는 특정 정당과 합의를 맺으면서 신페인당의 반발로 북아일랜드의 평화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으로도 포스터 대표의 몸값은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협상 결과에 따르면 DUP는 명시된 법안 외에는 사안별로 지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DUP가 반대할 경우 과반 의석이 어려워지는 보수당은 계속 손을 내밀어야 할 처지다. 포스터 대표는 “이번 합의를 잘 지켜 나가도록 감시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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