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아베 총리는 바뀌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03시 00분


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지난달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야 의원들과 일본을 찾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여러 정관계 인사를 만났다. 당시 함께 왔던 여당 의원은 일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한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일본 쪽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입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다”고 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때의 양국관계를 거론하며 “한일관계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일본이 할 수 있는 게 많다. 일본의 전향적 조치로 한일관계가 획기적 전환점을 맞았으면 한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5월 중순 특사로 일본을 다녀간 문희상 의원 역시 한국에 돌아가 “일본 측에 국민이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전달했고 이해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청와대에서도 방일 성과를 보고받고 굉장히 고무적인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아베 정권이 다소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두 차례 문 대통령과 통화했고, 특사를 주고받았다. 다음 달 초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첫 한일 정상회담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첫 정상회담까지 3년 가까이 걸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에서 한일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까. 솔직히 쉽지 않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에 성의를 보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일관계 전문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외교부가 아베 총리 명의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안을 거론했을 때, 아베 총리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한국 내 반발을 샀다. 이후 곤란해진 한국 측에서 “편지가 안 되면 합의 내용을 그대로 인쇄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보내 달라”고 제안했다. 합의 내용에 ‘아베 총리가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는 문구가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 측이 거절했다고 한다. 이 전문가는 “유감스럽지만 이것이 아베 정권의 한계”라고 말했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최근 일생의 과업인 ‘헌법 개정’을 앞두고 터진 각종 스캔들로 지지율이 일부 조사에서 30%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이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사정을 고려해 대승적 양보를 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은 26일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사무차관을 미국에 보내 위안부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등 미국 조야에 자신들의 주장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말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위안부 합의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도, 합의에 불만을 가진 한국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 사과를 하는 것이다” “일본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새 정권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일 것이란 기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은 즉각 반발했다.

아베 총리와 아베 정권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전향적이고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처럼 한일관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일본을 보고, 현실적인 대일정책을 짜야 한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정세균 국회의장#아베 정권#한일관계#위안부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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