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난이나 비판도 다 집어삼키며 몸집 키우는 ‘트럼프라는 괴물’을 어찌할꼬?
진보 인터넷 매체 ‘살롱’, 트럼프에 대한 어떤 보도 안 하는 ‘트럼프 없는 화요일’ 선언
‘무명(無名)보다 악명(惡名)이 훨씬 낫다’는 트럼프의 미디어 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허핑턴포스트 등도 비슷한 시도 했으나 ‘3300만 팔로어’ 거느린 최고권력자에 속수무책
“오랜 방송 경험이 있는 그는 신문과 방송뿐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의 생리도 꿰고 있다. ‘미디어는 나를 비판하기 좋아한다. 그래야 시청자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디어의 공격을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미디어가 나를 이용한 방식대로, 내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도 미디어를 이용할 뿐이다.’ 자서전의 이 대목에 이르면 ‘미디어가 알면서도 꼼짝없이 트럼프에게 당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기자는 지난해(2016년) 1월4일자 동아일보 ‘특파원 칼럼’ 코너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얕잡아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적었다. 당시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도 시작하기 전이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명의 경선후보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대(對)미디어 전략은 한 마디로 ‘무명(無名)보다 악명(惡名)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는 공화당 경선과 대선 본선, 그리고 취임 이후에도 이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대선 과정에선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한다. 인종 남녀 차별적 언어 사용 등을 삼가는 진보 진영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따위는 신경 안 쓴다”고 말해 백인 노동자 계급이나 보수적인 개신교 복음주의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진보 성향 주류 미디어는 ‘대통령 자격 없는’ 트럼프를 줄기차게 비판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보도들조차도 트럼프의 당선에 기여한 셈이 됐다.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 관련 보도 건수는 민주당 경선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모든 미디어가 트럼프만 쫓아다닌 것 아니냐. 트럼프란 괴물을 키운 건 결국 미국 주류 언론들이다.”
대선 직후 미디어비평가들의 대선보도 평가는 이렇게 요약된다. 많은 결함을 가진 트럼프가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다른 논란거리를 트위터 등에 내놓으면서 유권자들을 현혹했지만 주류 미디어들도 트럼프의 이런 전략에 놀아나기만 했다는 뼈아픈 비판이었다.
샌더스 상원의원도 대선 직후 발간한 자서전(‘우리의 혁명-믿을 수 있는 미래’)에서 “지난해(2015년) 10월 TV토론에서 ‘국민은 클린턴의 빌어먹을(damn) e메일에 지긋지긋해한다. 붕괴하는 중산층, 소득 불평등 심화, 사라지는 일자리 등 미국이 당면한 진짜 문제를 논의하자’고 말했는데 주류 미디어는 ‘e메일’(면죄부) 얘기만 보도하더라”고 지적했다. 미디어가 달(민생 현안의 중요성)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e메일 면죄부 발언)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위치(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에 있으면서, 약 3300만 명(28일 현재) 달하는 트위터 팔로어를 거느리며, 언론의 어떤 비판도 수용하기보다 다 삼켜버리는 ‘트럼프라는 괴물’을 도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이와 관련해 진보좌파 성향의 온라인 매체 ‘살롱(SALON)’이 27일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이날 하루를 ‘트럼프 없는 화요일(Trump-free Tuesday)’로 선언하고 트럼프 대통령 관련 기사나 사진을 일절 게재하지 않은 것이다. 살롱은 사고(社告)를 통해 “오늘 하루 그(트럼프)의 이름이나 사진을 게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의 정치와 문화, 미디어 등 거의 모든 것들이 한 사람(트럼프)에 의해 소비됐다. 대중의 담론이 마치 외계 침략자들이나 어떤 전염병에 먹혀온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에게 신물이 난다. 그를 찍은 사람과 지금도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두가 그렇다이제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된다. 모든 사람은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하다. 이것(트럼프 없는 화요일)은 짧은, 하루짜리 휴식”이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가 그를 백악관에서 몰아낼 수 없다면 우리는 국가적 심리에 미치는 그의 막대한 역할을 축소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일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첫 발걸음”이라며 “(이것이 맞는 길인지) 우리(살롱)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게 흥분된다. (독자)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당장 친(親)트럼프 성향 매체인 ‘브레이트바트’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살롱은 대선 기간 트럼프를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로 끊임없이 공격하고, 취임 뒤에도 대통령으로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해온 매체”라며 “최근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깎아내렸다.
살롱은 ‘트럼프 없는 화요일’ 시도가 1회성인지, 아니면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는 살롱의 시도가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미디어 업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로 끝난,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진보 성향의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트럼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치면이 아니라) 연예면에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의 선거유세는 구경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럼프가 던지는) 미끼를 물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말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연예 가십 코너에서 그의 기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이 매체의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우리가 연예면에서 다루겠다고 선언한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여전히 그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지만 더 이상 그를 연예 면에서만 다룰 순 없다”고 밝혔다.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면서도 당하는 미디어들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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