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난민 고통분담 안하면 구조선 안 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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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발칸 루트 막히자 난민 몰려… 최근 5일새 1만2000명 입국
“포화 상태”… 입항 금지 검토… EU에 조치 마련 공식 요구

이탈리아가 지중해를 건너오는 보트 난민들이 늘어나자 다른 국가와 비정부기구(NGO) 난민 구조선의 자국 항구 입항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난민 포화상태에 달하자 유럽연합(EU)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시위성 칼날을 뽑아 든 것으로 풀이된다.

마우리치오 마사리 주EU 이탈리아대사는 28일 디미트리스 아브라모풀로스 EU 이민담당 집행위원을 만나 EU의 난민 수용 절차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서한에는 이탈리아가 난민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려운 지경에 달했으며, 난민 정책을 극적으로 바꾸는 걸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로이터통신은 이탈리아가 고려 중인 정책에는 타 국적 선박이나 국경없는의사회 등 NGO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의 이탈리아 항구 입항을 금지하는 조치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리비아에서 해상 경로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는 그동안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이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쏟아지는 최전선 역할을 해왔다. 이탈리아의 지중해 해역에서는 이탈리아 해안경비대뿐만 아니라 영국 등 EU 회원국이나 NGO 선박들이 보트 난민들을 발견해 구조한 뒤 이탈리아 내 영토에 내려주고 있다. 다른 국적이나 NGO의 난민 구조선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이탈리아 내 난민이 폭증하면서 국내 정치문제까지 야기되는 상황이다. 올해에는 지난해(18만1000명)보다 많은 최대 25만 명의 난민이 이탈리아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5일 동안에도 보트를 타고 온 난민 1만2000명이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 EU의 동쪽에서 중동 난민이 유입되는 주요 통로였던 발칸 루트가 지난해 폐쇄된 것도 이탈리아 난민 폭증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난민 구조선 입항 거부라는 이탈리아의 극단적인 카드가 국제법상 적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은 모든 선박이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배들을 보면 반드시 도와야 하고, 해당 해역 국가는 최우선 책임을 지고 구조작업을 펼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이탈리아가 검토하는 조치를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제스처로 판단하고 추가적인 경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이탈리아의 집권 민주당은 정권 유지를 위협받는 상황이다. 25일 치러진 일부 지역 지방선거에서 중도우파 포르차 이탈리아와 극우파 북부동맹연합이 대승을 거두면서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었던 집권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도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발칸#난민#이탈리아#보트 난민#ngo#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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