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황제 루트’에… 구멍 뚫린 유럽 보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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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난민’ 그리스 신분증 위조… 비행기 타고 서유럽으로 직행
IS조직원들 테러에 악용 우려

최근 터키에서 육로로 그리스에 들어온 뒤 위조 그리스 신분증을 이용해 비행기를 타고 서유럽 국가로 불법 입국하는 방식의 난민 유입이 활개치고 있다. 지난해 3월 발칸 루트가 막힌 이후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는 루트로 난민이 몰리고 있는데, 돈 많은 일부 난민은 사망 위험이 높은 지중해 루트 대신에 안전한 그리스∼서유럽 비행기 루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시리아 출신인 30대 남성 아흐마드(가명) 씨는 4월 12일 7000유로(약 917만 원)를 들여 꿈에 그리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땅을 밟은 후기를 1일 텔레그래프에 공개했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차량으로 그리스 접경 도시인 터키 북서부 에디르네로 이동한 다음 1시간가량 메리츠강으로 걸어갔다. 이 강은 터키와 그리스 영토 사이에 흐른다. 그는 미리 준비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2분 만에 그리스 영토로 진입했다. 그가 1000유로를 주고 고용한 밀수업자는 그리스 국경수비대를 매수해줬다.

그는 택시를 타고 아테네로 이동한 다음 신분증 위조 브로커에게 6000유로를 주고 그리스 주민등록증을 구입했다. 실존하는 그리스 국민 이름이 적힌 신분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샀다. 유럽연합(EU) 국가끼리 이동할 때는 솅겐조약에 따라 여권을 보여주지 않고 자국 신분증만 제시해도 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는 아테네 공항에서 별다른 확인 없이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다음 영어로 간단한 심사를 마치고 입국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향하는 발칸 루트는 지난해 3월 터키와 EU의 난민송환 협정으로 막혔지만 돈만 충분하면 어떻게든 입국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육로로 서유럽으로 가려면 숱한 동유럽 국가를 거쳐야 하지만 비행기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어 ‘부호 난민’에게 인기가 높다.

솅겐조약을 악용한 가짜 그리스 신분증 밀입국은 유럽 본토에 테러를 노리는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도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 보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가짜 신분증으로 EU 국경을 넘으려다가 적발된 이들이 7000명을 넘었다. EU 회원국끼리는 위조 신분증을 검사하는 단일화된 방식이 없어 적발에 애를 먹고 있다. 실제론 훨씬 많은 이들이 가짜 신분증을 악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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