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딥포커스]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쇠창살을 뛰어넘은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류샤오보-류샤 부부의 러브 스토리

병색이 완연한 류샤오보(왼쪽)와 아내 류샤 씨. 부부는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는 걸 보여주기 싫어 아이를 갖지 않았다. 사진 출처 BBC 중문판 홈페이지
병색이 완연한 류샤오보(왼쪽)와 아내 류샤 씨. 부부는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는 걸 보여주기 싫어 아이를 갖지 않았다. 사진 출처 BBC 중문판 홈페이지

중국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62)를 진료하기 위해 중국 선양(瀋陽)의 중국의대 제1병원을 찾은 독일과 미국 의사 2명은 8일 류샤오보 병상 옆에 섰다. 병상을 둘러싼 중국 의료진 10여 명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삭발한 여인의 가냘픈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의식이 없고 뼈만 앙상한 류샤오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독일 의사는 “중국 의료진이 책임 있게 치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영어로 말했다. 여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류샤오보에게서 떼지 않았다. 미국 의사가 여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 뒤 팔을 잡아 병상 옆으로 끌어당기려 하지만 거부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홍콩 밍(明)보가 10일 공개한 57초짜리 동영상에 등장한 여인은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劉霞·56). 간암 말기에야 가석방된 류샤오보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류샤오보만큼이나 앙상한 류샤의 모습이 세계를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2010년 류샤오보가 옥중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류샤 역시 베이징(北京)의 작은 아파트에 가택연금됐고 우울증을 얻었다. 류샤오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최근에야 부부는 수년 만에 재회했다.

영국 BBC 중문판은 10일 중국 당국의 탄압을 이겨낸 류샤오보 부부의 가슴 아픈 로맨스를 전했다. 기사 제목은 ‘수용소의 쇠창살을 뛰어넘은 사랑’이다.

류샤오보는 1995년 톈안먼(天安門) 6주년 기념행사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복역하던 중 1996년 류샤와 옥중결혼을 했다. 결혼식은 교도소 식당에서 열렸다. BBC는 “사랑을 방해한 중국 정부에 저항한 부부에게 결혼은 작은 승리였다”고 표현했다.

류샤는 1999년 류샤오보가 석방될 때까지 매달 베이징에서 동북지방의 교도소까지 1600km를 이동해 면회했다. 교도소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썼다.

“수용소로 가는 기차 안/구슬픔이 나를 뒤척이게 하네/나는 당신의 손을 끌어당기지 못하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류샤오보가 1989년 봄 톈안먼 시위 뒤 20개월의 감옥생활을 마친 뒤 모든 것을 잃었을 때였다. 생기발랄하고 재능 있는 류샤를 만났을 때 류샤오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아름다움을 한 몸에 갖춘 여인을 만났어.”

하지만 행복은 짧았다. 1999년 류샤오보가 출소한 뒤에도 부부가 단둘이 같이 있는 시간은 적었다. 중국 체제의 문제를 호소하기 위한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다시 체포되기 전까지 류샤오보는 무리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일부 비평가는 “이 시기 그의 저작이 너무 많다”며 “어떤 작품은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류샤오보는 “언젠가 내게 일어날 일 이후에 류샤가 힘들지 않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2008년 ‘그 일’이 일어났다. 중국에 일당독재 정치개혁을 요구한 ‘08 헌장’ 발표 이후 그는 국가 전복 선동을 했다는 이유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법정에서 류샤오보는 마지막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 곁에 머물러준 류샤에 대한 감사로 마무리됐다.

“나는 유형의 감옥에서 복역하고 당신은 무형의 마음의 감옥에서 기다리오.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높은 담장을 뛰어넘고, 쇠창살의 햇살을 꿰뚫어요…내 감옥 생활의 매분 매초를 의미로 가득하게 해주오.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고 어떤 때는 몹시 무거워 날 비틀거리며 걷게 만든다오.”

BBC는 “현재 류샤오보가 해외 치료를 원하는 것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류샤에게 일어날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류샤를 위해서”라는 소식통의 증언을 전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민주화 운동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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