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밀어내고 왕세자 오른 빈 살만
82세 고령 국왕 모로코로 휴가떠나… 한 달간 국정운영 전권 맡아
개혁개방 정책으로 젊은층 지지
외교 강경노선… 중동 불안정 우려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82)이 24일부터 한 달간 모로코로 긴 휴가를 떠나면서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부총리(32·사진)가 당분간 국정의 전권을 쥐게 됐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살만 국왕은 자신의 부재 기간에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고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라는 칙령을 빈 살만에게 내렸다”고 전했다.
걸프 지도자들이 해외로 휴가를 떠날 때 후계자에게 국정 운영을 맡기는 것이 관례지만 지난달 왕위 계승권자가 된 빈 살만이 이 역할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빈 살만은 지난달 21일 아버지뻘 사촌이자 종전 왕세자였던 무함하드 빈 나예프 내무장관(57)을 밀어내고 권력 전면에 나섰다.
왕세자 교체 발표 당시 서로 포옹하는 등 겉으로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실상은 치밀하고 살벌한 ‘왕좌의 게임’이었다. 살만 국왕은 세자 교체를 발표하기 전날 밤 빈 나예프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약물(진통제) 중독을 문제 삼으며 왕세자 자리를 내놓으라고 밤새 압박했다. 같은 시간 빈 살만의 측근들은 사우디 왕족 원로로 구성된 왕위계승위원회에 서신을 보내 왕세자 교체를 위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휴대전화를 빼앗긴 채 감금된 빈 나예프는 동이 트고 왕세자 지위를 포기한 뒤에야 왕궁을 나설 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빈 살만은 “당신의 지도와 조언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빈 나예프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2년 넘게 계속된 왕권 경쟁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현재 빈 나예프는 가택 연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최연소 국방장관에 임명된 빈 살만은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회장을 겸직했다. 그는 또한 왕실 경제·개발위원회 의장으로 사우디의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탈(脫)석유 개혁정책 ‘비전 2030’을 주도해 왔다. 빈 살만은 보수적인 사우디의 문호를 개방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책으로 젊은층의 두꺼운 지지를 받고 있다. 서방에서는 사우디 권력을 통째로 거머쥔 그를 ‘미스터 에브리싱’이라고 불렀다.
실세 왕세자가 권력의 전면에 나서면서 사우디 정계가 젊은 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령인 국왕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설이 돌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빈 살만은 30대에 왕좌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젊은 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빈 살만은 사우디 내부에서 개혁의 아이콘이지만 지난해 초 이란과의 외교 단절을 선포하는 등 외교적으로는 강경노선을 밟고 있다. 국방장관으로 주도한 예멘 군사개입 이후 사태는 더욱 악화됐고, 카타르 단교 사태 역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빈 살만의 젊고 공격적인 성향이 중동 지역에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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