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특파원의 인사이드 아메리카]갈수록 강경해지는 미국의 대북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14시 29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원안 그대로 서명할 수도 있고, 거부권을 행사하고 러시아에 대한 더 강경한 조치를 협상할 수 있다.”

앤서니 스카라무치 미국 백악관 공보국장은 27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서 논의 중인 북한 러시아 이란 패키지 제재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스카라무치 국장의 발언이 있은지 몇 시간도 안 돼 미 상원은 98대 2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북한 러시아 이란 패키지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상하원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이 법안을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대한 독자 제재의 강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 전방위 제재로 북 핵개발 자금줄 차단

이날 상원을 통과한 러시아 이란 북한 패키지 제재 법안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자금줄을 끊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 원유 수입 봉쇄, 북한 및 유엔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한 국가 소유 선박의 미국 해역 운항이나 항구 접안 금지, 북한이 강제 노역을 시킨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의 미국 수입 금지, 북한 온라인 상품 거래 및 도박 사이트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달 4일 북한의 ICBM 발사 실험과 관련해 유엔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이 논의 중이지만, 이와 별개로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의 강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 보유 시기를 내년도로 앞당기며 배수의 진을 치는 모양새다. 미군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북한이 이르면 내년초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실전 배치할 능력을 갖출 것’이라는 미 국방정보국 보고서에 대해 “우리는 이것(북한이 핵미사일을 확보하는 것)이 곧 기정사실이 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지금 거의 정점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 “북한 선박 해상 봉쇄 등 전례없는 제재 고려해야”


북한의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전방위 압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는 이날 주뉴욕 총영사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뒤 본보 기자와 만나 “전례 없는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제재를 통해 체제 전복 위협을 느낀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해상봉쇄(Naval blockade) 등이 전례 없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해상봉쇄는 중국의 도움 없이 미국, 한국, 호주 해군 등이 합동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의 무력 도발을 피하기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미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2015년 ‘이란 핵 합의’ 체결 이전 이란과 거래한 모든 나라를 제재한 ‘세컨더리 보이콧’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구진은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이 미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면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북한의 교역도 막대한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북한의 수출과 관련된 모든 은행·기업 제재, 북한에 지급될 자금 동결, 북한 수출입항 제재 등이 담긴 새로운 대북 제재 법안을 제안했다.

● 양원 압도적 찬성, 대통령 거부권 무력화


북한 러시아 이란 패키지 제재법안은 25일 하원에서 이미 찬성 419명, 반대 3명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이날 상원에서도 찬성 98표, 반대 2표가 나왔다. 민주당 버니 샌더스, 공화당 랜드 폴 의원만 반대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았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회에서 재의결 정족수(3분의2)를 넘어선 찬성이 나와 ‘거부권 방지선(Veto Proof)’을 훌쩍 넘겼다는 분석이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거부권 방지선을 넘은 법안을 거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면 의회가 뒤집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찰스 슈머 상원의원(민주당)은 “대통령이 더 강한 조치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헛소리라는 걸 알았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민들은 그가 푸틴에 약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커 위원장도 스카라무치 공보국장의 ‘비토’ 발언에 대해 ‘심각한 실수’ ‘막말(off-handed comment)’이라고 비판했다.

● 러시아 대선개입 제재 나선 미 의회

미 상원은 이번 패키지 법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러시아 제재를 맘대로 바꾸지 못하게 대못을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조사와 관련해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법안이 악화된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도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의 활동에 대한 양당의 우려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언론들은 이번 패키지 법안에 포함된 러시아 제재 법안과 관련해 “공화당 주도 의회의 트럼프 외교정책에 대한 첫 번째 견제”(더 힐), “러시아 선거개입에 대한 의회의 분노”(파이낸셜타임스) 등의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법안은 러시아의 부패, 인권 탄압, 무기 판매 및 에너지 수출 등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전방위 제재가 포함됐다. 미 의회가 지난해 미 대선 개입, 우크라이나 침공과 크림 반도 합병,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 지원 등 러시아의 행보를 그냥 바라만 보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지난해 미 대선 개입 의혹을 거듭 부인하며 “워싱턴이 불법적인 제재를 통과시킨다면 모스크바도 보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자국 에너지 산업과 인프라 프로젝트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뉴욕=박용특파원 par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