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어느 날, 친정 어머니가 “주위 사람에게서 받았다”며 검은 새끼 고양이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어 데리고 왔다. 당시 어머니는 파킨슨병과 관련된 난치병에 걸린 것이 확인됐을 때였지만, 아직 증상은 가벼운 초기 단계였다. 파킨슨병은 손발이 서서히 굳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고, 말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 증상이 특징이다. 어머니의 경우는 언어 쪽에서 장애가 생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받았다”고 주장한 검은고양이는 몸이 작고 얼굴이 눈꼽 등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짐작하건대 사람들에게 주기에는 불편할 것 같은 상태였다. 게다가 이 고양이는 녹초가 된 채 거의 울지도 않았다. 건강상태를 조사해보니 탈장이 돼 있었다. 곧바로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의사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그 고양이의 생명력은 강했던 것일까. 일주일정도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상태였지만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그 후 감기에 걸리는 등 병원을 수시로 오가면서도 몸집은 조금씩 커졌다. 그렇게 몸에 항체가 생긴 덕분인지 언제 병을 앓았는지 거짓말처럼 건강하게 정원을 뛰어다니게 되었다.
검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등 보살피는 것은 어머니의 하루 일과가 됐다. 고양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나 이름을 불러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그 고양이는 가끔씩 본가에 놀러가는 나에게도 재롱을 부리는,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2년 후 검은 고양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 고양이가 없어지면서 집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렇게 귀여워하던 고양이가 사라졌는데도 어머니는 담담해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병은 조금씩조금씩 악화되고 있었다.
‘도대체 어머니는 왜 검은 고양이를 주워 온 것일까?’ ‘옛날에 길렀던 검은고양이 미코가 떠올랐던 것일까?’ 기억의 깊은 곳에, 자신이 아직 젊고 자신의 가족이 모두 모였던 그때를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일까….
당시 친정에선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어머니는 70세 정도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 후 자신이 담당하던 일을 오빠의 아내에게 맡기고 집에 있었다. 하지만 손자들이 독립해버린 집에서는 할 일도 별로 없고 검은고양이의 돌볼 때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어머니에게 저 검은고양이는 ‘자신이 뭔가의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 존재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캣 테라피였던 셈이다.
어머니를 위해 한 번 더 고양이를 기르도록 해드리고 싶다. 예전처럼 고양이를 잘 돌보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분명 미소가 늘어날 것이기에….
※동아일보 독자께: 이번으로 12회 연재한 ‘고양이일기’ 칼럼을 일단 끝냅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신 독자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양이에게는 정말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 매력을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전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필자 카이세 히로미 씨는?
2012~2015년 서울 거주.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뒤 궁중 요리를 배우는 등 한국 문화를 좋아했다. 집에서 비비와 하루 두 고양이와 지낼 때가 최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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