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25일 중국의 최고 부자인 왕젠린(王健林·62) 다롄완다(大連萬達) 회장이 출국 금지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권력은 유한하고 금력(金力)은 무한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날 한중 양국의 최고 ‘금력’에게 벌어진 일을 보면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재벌이든 최고 부호든 제압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대도시의 노른 자위 땅에 복합 쇼핑몰 ‘완다 광장’ 등을 개발해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이 된 뒤 최근에는 극장 등 문화사업으로 확장중인 부동산 재벌인 완다는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정치권력과의 유착설이 끊이지 않았다.
재산 규모 약 300억 달러인 왕 회장은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과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중국 및 아시아의 제 1 부자의 자리를 다투는 인물이다. 그런 왕 회장이 보도대로라면 급히 가족과 함께 국외로 나가려다 저지된 것이다.
중화권 매체 보쉰(博迅)은 왕 회장이 25일 가족 전원을 데리고 톈진(天津) 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에 탑승해 영국으로 가려다 제지를 당한 뒤 억류됐다고 보도했다. 왕 회장과 가족은 몇 시간 뒤 풀려났지만 출국금지 상태라고 전했다.
왕 회장에게 이상 신호가 나타난 것은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가 최근 취한 조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완다그룹이 2012¤2016년 진행한 해외 기업 인수건 가운데 6건이 해외 투자규정을 위반했다며 국영 대형 은행들에 자금 지원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국영 은행들은 이 회사가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담보 대출을 해줬는데 중국 정부의 해외 자금 유출 제한 방침과 배치된다는 판단에서다.
WSJ 보도대로라면 대형 국영은행이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한 곳에 대출을 하면서 정부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얘기다. 이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왕 회장의 출국금지를 전하는 대만중앙통신은 “다롄 완다의 급속한 성장이 고위층의 비호 없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중국 당국이 본격 조사에 앞서 출국을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왕 회장의 조사와 보이지 않는 배후의 권력 투쟁이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앞서 중국에서 최고 부자에 올랐다가 ‘한 방에 훅 간’ 대표적인 인물은 전자제품 유통업계의 혁명을 일으켜 ‘현대 유통업의 선구자’로도 불렸던 궈메이(國美)의 황광위(黃光裕) 전 회장이다. 중국의 부호 순위를 발표하는 ‘후룬(胡潤) 리포트’에 따르면 황광위는 1999년 처음으로 최고 부자에 오른 뒤 2004년과 2005년 2008년에도 최고 부자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황광위가 2008년 11월 돌연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2010년 14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황광위는 2004년 최고 부자 자리에 올랐을 때 “후룬 순위는 지명 수배령이나 다름없다. 후룬 순위표에 올라가는 자는 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이자 중국에서 최고 부자가 오르는 과정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 위에서 칼 날 위를 걸을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황광위의 성장과 몰락 과정에서 정치 권력과의 관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의 안방(安邦)보험은 중국에서 권력과 자본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보게 한다. 안방보험은 2014년 뉴욕 맨해튼의 랜드 마크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2조원 가량에 사들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안방은 이어 유럽의 금융회사들을 잇따라 사들여 인수합병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올 4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일가와 맨해튼 한 가운데 위치한 고층빌딩에 펜트하우스를 짓는 사업을 진행하다 중단하기도 했다.
저장(浙江) 성에서 작은 자동차 판매업체로 출발해 2004년 안방보험을 세운 뒤 13년만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안방보험의 성장 비결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때 안방 보험의 우샤오후이(吳小暉) 회장이 개혁 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 사위라는 것이 알려지자 ‘그러면 그렇지’하는 반응이 나왔다. ‘덩샤오핑의 후광’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우 회장의 부인은 덩의 장녀 덩난(鄧南)의 딸 줘루이(卓芮)다. 안방은 동양생명을 인수하고 우리은행에도 지분 투자해 한국에도 적극 진출해 있다.
그런데 우 회장이 6월 돌연 사임한 데 이어 그가 당국에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다시 한 번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우 회장이 물러나고 구속설이 나오는 것은 ‘덩샤오핑 손녀 사위’라는 후광으로도 막을 수 없는 권력 투쟁이 배후에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안방보험의 초고속 성장과 자금출처가 불분명한 대규모 해외합병을 두고 의혹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권력층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창구로 해외 기업 인수합병이 수단으로 쓰였다는 설까지 나왔다.
투자회사 밍톈(明天)그룹은 어떤가. 이 회사 창업자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은 올 1월 홍콩의 한 호텔에서 갑자기 대륙으로 체포 송환 조사한 뒤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혐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시 주석의 누나 부부의 재산 증식에 연루됐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그가 시 주석과 관련한 어떤 폭탄을 터트릴지 몰라 사전에 억류해 입을 막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에서 자본과 권력간의 긴장 관계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자로 중국의 ‘혁신과 창업’의 아이콘인 마윈(馬雲) 회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국무원 산하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이 알리바바의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타오바오에서 판매되는 물품 중 정품 비율은 37.25%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가짜라고 발표했다. 알리바바측은 “잘못된 샘플링에 의한 틀린 결과”라고 반박했다. 홍콩과 중화권 매체들은 마 회장을 당국이 좋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실었다.
앞서 알리바바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손자 장즈청(江志成)이 운영하는 것으로 홍콩에 있는 사모펀드 회사인 ‘보위캐피탈’에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 가을 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의 최대 경쟁 상대는 장 전 주석 계열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판결에 대해 이 부회장측과 검찰 모두 항소하겠다고 밝혀 최종 판결은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권력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중국도 우샤오후이 회장과 왕젠린 회장이 어떻게 처리되는 지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진행과정에서 연출됐던 권력과 자본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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