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대비 훈련으로 단련된 일본의 철통 경보시스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J얼러트도 北미사일 땐 기초단체 16곳서 장애 발생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 같으니 튼튼한 건물이나 지하로 피난하세요.”

지난달 29일 오전 6시 2분. 홋카이도(北海道) 등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 자치단체 12곳의 야외 스피커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이와 동시에 주민들의 스마트폰에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다. TV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 속보를 내보냈다.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기 4분 전의 일이었다. 주민들은 집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았고, 일부는 지정된 대피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일본이 이처럼 신속하게 경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순간경보시스템(J얼러트) 덕분이었다.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인공위성을 통해 야외 스피커, 휴대전화, TV, 라디오 등으로 국민에게 경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 때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정부의 대응도 빨랐다. 미사일 발사를 확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발사 4분 후인 오전 6시 1분 만반의 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해상보안청은 2분 후 항행 경보를 발령했고, 그로부터 1분 후 국토교통성은 비행 중인 항공기들에 주의를 당부했다. 정부는 J얼러트와 긴급정보네트워크시스템(엠넷)을 사용해 1시간 동안 6번의 경보를 내보냈다. 철도회사 JR히가시니혼은 오전 6시부터 최대 32분 동안 열차 운행을 중지했다. 초중고교와 유치원 48곳이 등교 시간을 늦췄고 4곳은 휴교를 결정했다.

전 세계 강진의 20% 이상이 일어나는 일본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재난 발생 같은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다. 정부는 간토(關東) 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삼고 매년 전국적인 훈련을 실시한다. 또 전후 일주일을 방재주간으로 정해 자치단체별로 훈련을 실시한다. 당일에는 공공 교통수단이 마비됐다는 전제하에 각료들이 모두 걸어서 출근한다.

유치원 때부터 재난 대응 요령을 가르쳐 몸에 익도록 한다. 회사에서도 의무적으로 매년 소방 훈련과 피난 훈련을 한다. 자치단체들은 재난 대비에 필요한 책자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포한다. 도쿄(東京)가 발행한 ‘도쿄 방재(防災)’ 책자는 300쪽이 넘는데 한국어판도 있다. 상황별, 장소별 대처 요령이 자세히 나와 있어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한국 누리꾼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지진 등 재난 대비 위주였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올해 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자 TV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대피 요령을 안내했다. 자치단체들도 잇달아 훈련을 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외부에 있다면 가급적 튼튼한 건물이나 지하로 몸을 숨겨야 한다. 도심이라면 지하철, 지하 상가 등이 추천 장소다.

근처에 건물이 없으면 그늘에 몸을 숨기거나 땅에 엎드려 머리를 감싸야 한다. 실내에 있다면 창문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창문이 없는 방으로 이동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근처에 미사일이 낙하했다면 생화학 무기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입과 코를 손수건으로 막고 현장에서 즉시 벗어나야 한다. 실내라면 환기를 멈추고 창문을 닫아 실내를 밀폐 상태로 만드는 게 좋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정부의 신속한 정보 전달에도 불구하고 실제 피난을 한 주민은 많지 않았다. 첫 번째 경보로부터 12분 후 ‘일본 상공을 통과했다’는 두 번째 경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가능했던 것은 집 창문 옆에서 벗어나는 대응 행동 정도였다. 이 때문에 다음 날 일본 신문에는 “도대체 어디로 피하라는 말이냐” “시골에는 튼튼한 건물도, 지하도 없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기술적인 문제로 경보가 전달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소방청은 “시정촌(기초자치단체) 16곳에서 J얼러트 전달에 지장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향후 훈련을 더 철저하게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경보시스템#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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