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유예 프로그램’ 폐지 강행 방침
오바마, 불법체류자 구제 위해 도입
한국인 ‘드리머’도 1만7000여명
민주당 “인간존엄성 믿음 깨는 일”
주요기업 CEO 400명 반대 청원
반대단체, 이방카 집앞서 시위도
4일 밤, 백악관 최고 실세의 집 앞에 촛불이 켜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을 곧 폐지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오자 절박해진 당사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이 해당 정책에 우호적인 대통령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워싱턴 집 앞을 찾아 “드리머(Dreamer·미국 체류가 허용된 불법체류자 자녀)’를 보호해 달라”며 단체로 촛불을 들고 호소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청소년들과 시민들이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에도 약 80만 명에 이르는 드리머 보호 조치는 풍전등화와 같다.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6개월 유예를 두고 DACA를 폐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DACA 반대파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5일 오전 관련 정책 내용을 발표했다.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둔 것은 골칫거리인 DACA 처리의 세부사항을 의회에 넘겨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DACA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2년 6월 도입한 제도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청년들을 구제하고 유일한 생활 기반인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한 정책이다. 미국에 처음 입국했을 당시 나이가 만 16세 미만이고 체류 기간이 5년 이상이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도 제시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제도이며 관련 법안인 ‘드림 액트’는 2010년 하원은 통과했으나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해 DACA 정책은 지난해 정권 교체 이후 입지가 불안했다. 텍사스와 앨라배마 등 10개주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DACA를 폐지하지 않으면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DACA를 손보면서 양날의 칼을 쥐게 됐다. 핵심 지지층에 약속을 지켰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됐지만 정치적 역풍이 불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기간 불법체류자들을 일괄적으로 추방하겠다고 주장하면서 DACA에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트럼프 측근 중 몇 안 남은 ‘국수주의자’로 알려진 스티븐 밀러 고문과 세션스 장관이 대표적인 DACA 반대파로 대통령을 강하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운명이 달린 문제인 만큼 반(反)이민행정명령의 경우처럼 백악관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DACA 폐지 방침에 대해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믿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믿음을 깨버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CNN머니는 애플과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물론 웰스파고와 AT&T 등을 포함한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400명이 드리머 추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청원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4일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DACA 폐지의 민감성을 인지한 트럼프 대통령이 ‘빠져나갈 방안’을 찾아낼 것을 참모들에게 요구해 존 켈리 비서실장이 ‘6개월 유예’ 방안을 내놓고 의회가 (유예 기간 동안) 법적 해결책을 찾도록 했다고 4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트위터에 “의회는 일할 준비해라! DACA”라고 적었다.
한인 사회도 일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민서비스국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1차 신청자와 재신청자를 합해 약 1만7000명의 한국인 드리머가 집계됐다. 한국 국적 DACA 수혜자 수는 멕시코와 엘살바도르 등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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