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들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8일 03시 00분


정부 비판 앞장선 여성 원로언론인 피살

관료 부패 고발해 살해협박 받아
5일 집 나서다 총 맞고 사망
현지 언론 “인도 민주주의의 죽음”

인도 언론인 1992년이후 27명 피살

6일 인도 벵갈루루의 차마라지페트 공동묘지. 하루 전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주 자택을 나서다 총격으로 암살된 원로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가우리 랑케시를 추모하기 위해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들은 유리관 속에 누인 랑케시에게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렸다. 거리 곳곳에서 ‘다음엔 누가 살해당할 것인가(Who is next?)’ 등이 적힌 팻말이 등장한 항의집회가 열렸다.

55세에 세상을 떠난 랑케시는 인도의 유명 시인인 P 랑케시의 딸이다. 아버지 랑케시는 1980년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주의 공용어인 카나다어로 된 타블로이드 신문 ‘랑케시 파트리케’를 설립했다. 이 매체는 중소도시와 시골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 보도에 집중하고, 정치인들을 풍자해 언론의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우리 랑케시는 200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언론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오빠와 갈등을 겪으며 5년 뒤에 자신의 독자 매체인 주간지 ‘가우리 랑케시 파트리케’의 발행을 시작했다. 그는 여성과 극빈자, 카스트제도의 하층부 등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특히 현재 집권당인 힌두민족주의 성향의 인도국민당(BJP)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힌두계 극우파들의 미움을 샀다. 2016년 그는 BJP의 지도자들을 ‘도둑’이라 부르며 그 폭력적 행보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이번 주 발행본엔 카르나타카주 전직 관료의 부패 스캔들을 다뤘다가 살해 협박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 결국 그는 5일 집을 나서던 중 머리와 어깨에 총탄 4발을 맞고 숨졌다.

최근 인도에서는 힌두교 극우세력을 비판하는 언론인과 학자들을 공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자들의 경우 성폭력 협박을 받기도 한다. 인도 매체 ‘와이어’의 시다르트 바라다라잔 편집장은 “그의 사망은 인도 언론과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며 “정부는 범인을 잡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권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의 발표를 인용해 2017년 ‘세계언론자유지수’ 조사 결과 인도가 180개국 중 136위에 머물렀다고 보도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1992년 이후 인도 언론인 27명이 정부 비판 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인도인#여성#원로언론인#피살#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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