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발생한 수많은 사건사고 중에서도, 그 날짜를 그대로 따서 불리는 9·11테러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임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8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에 여객기가 충돌한 사건이다. 8분 뒤인 9시 6분, WTC 옆 동에 다른 여객기가 날아들었다. ‘쌍둥이빌딩’으로 알려진 두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다. 높이 100여 층의 건물이 구름 같은 흙먼지와 함께 흘러내리듯 무너지는 모습은 전 세계가 TV 생중계로 마주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9시 45분 경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미국 국방부 건물에도 여객기 한 대가 충돌했다. 또 다른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 남쪽 산지에 추락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수도 워싱턴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모두 피랍된 항공기들이었다.
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105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로 정리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요 용의자로 지목한 테러리스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조직인 알 카에다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를 ‘21세기 첫 전쟁’으로 규정하고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다. 10월 7일 폭격기에 의한 공습이 시작됐고 11월 12일 수도 카불이 미군에 함락됐다. 도피를 계속하던 빈 라덴은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9·11테러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입혀졌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새뮤얼 헌팅턴)로도, 미국 패권의 종식(이매뉴얼 월러스틴)으로도 여겨졌다. 어떤 의미든 그 속에는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와 남은 사람들의 상처가 있다.
“세상의 어떤 이데올로기가, 어떤 종교가, 어떤 문명 간 갈등과 증오가 한 사내의 아내 사랑, 딸 사랑을 이렇듯 참혹하게 단절시킬 수 있는가. 아내와 어린 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강요할 수 있는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수만의 영혼 앞에 그 어떤 테러의 명분을 둘러댈 수 있겠는가.”(동아일보 2001년 9월 14일자 10면)
그러나 테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하는 영국 런던의 차량 테러,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맨체스터 공연 중 폭탄테러 등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잔혹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도 전 세계에 위협이다. 과연 지구의 평화는 언제쯤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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