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독일계 ‘마크로’ 등을 인수하며 중국의 대형마트 시장에 진출했던 롯데마트가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를 발표했다. 1997년 상하이(上海) 1호점을 시작으로 2010년 27개까지 점포수를 확장했던 이마트가 최근 철수를 선언해 한국 양대 유통업체가 모두 중국에서 패퇴하는 형국이다.
롯데의 중국 철수는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이 결정타가 됐다. 중국은 롯데가 성주 롯데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한 것을 빌미로 소방 위생 점검을 벌여 온갖 치졸한 트집을 잡았다. 우리도 한 때 ‘구청 위생과와 소방서에서 점검나와 털면 식당과 점포 등은 남아날 곳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
지난달에는 베이징 주센차오교(酒仙橋)점과 양차오(洋橋)점 2곳의 롯데마트 발전기가 에너지를 과다 사용했다며 발전기와 변압기를 뜯어가 몰수했다. 이 물품은 경매 처분된 뒤 모두 국고로 들어간다고 한다. 경매 예상가는 400만 위안(약 6억 8000만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당국은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했다. ‘중국이라지만 참 별의별 법과 규정도 다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롯데는 중 당국의 집요한 ‘세무 위생 소방 점검 3종 세트 털기’로 99개 마트 중 87곳의 영업이 이미 중단됐다. 문을 닫고도 직원들 월급은 지급하는 등 출혈을 거듭해 3월과 8월 총 7000억 원을 긴급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롯데는 중국 현지의 골드만 삭스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마트 99개와 슈퍼 13개 등 중국내 112개 점포의 일괄 매각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빠르면 올해 내 철수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중국이 어떤 몽니를 부리며 매각과 철수를 방해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롯데마트의 철수는 중국에 들어온 다른 많은 외국 기업에게도 경종이 될 수 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하는 정치적 리스크가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준 것이다. 중국 정부에 밉보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아무리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자유무역의 대변자로 나선 듯 연설을 해도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면 배겨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 보복으로 롯데를 궁지로 몰아 철수하게 한 것은 중국에게는 시장 질서에 대한 부당한 권력의 몽둥이를 휘두른 멍에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중국에게도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롯데마트 철수와 관련한 중국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비판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숨을 돌리면 또다른 측면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롯데가 사드 보복 때문에 중국에서 철수하지만 그게 다인가’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오프라인 위주의 중국 롯데 유통사업’이 사드 보복이 아니어도 시장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롯데마트가 2015년 7월 산둥성에서 4곳 문을 닫았다. 사드와는 무관하게 현지 토종 유통업체와 알리바바, 징둥(京東) 등 전자상거래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해 8월 신동주 전 롯데 부회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중국 사업에서 1조원의 적자를 냈으나 고의로 보고를 누락해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를 뒤늦게 알고 격분했다”고 주장했다. 롯데판 ‘형제의 난’ 와중에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중국에서의 롯데 사업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국 내 백화점의 대명사로 유통업계의 선두이자, 자존심이기도 한 롯데의 중국 진출은 어디에서 왜 꼬였나. 전문가들이 분석할 일이지만 이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중국 1호 롯데 백화점의 진출과 퇴장이다.
롯데백화점은 2008년 8월 1일 베이징(北京)의 최대번화가 왕푸징(王府井) 거리에 1호점을 열었다. 중국 인타이(銀泰)그룹과 50대 50 합작한 것으로 이름은 ‘낙천인타이바이훠(樂天銀泰百貨)’다. 매장은 지하 1층부터 7층, 8층은 식당가로 영업면적 3만6060㎡로 소공동 롯데백화점의 3분의 2 크기다. 국내 백화점으로서는 첫 중국 진출이자 롯데는 러시아 모스크바점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진출이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 개막(2008년 8월 8일)을 며칠 앞두고 롯데 관계자들은 현지 특파원 간담회 등을 갖고 1호 백화점 오픈을 앞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롯데 백화점 왕푸징점은 문을 열기 전부터 문을 닫을 날만 남았다’는 ‘필패론(必敗論)’을 제시했다. 가장 큰 이유는 ‘거기는 백화점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다’는 점이었다.
말이 ‘최대 번화가 왕푸징’이지 왕푸징 관광거리의 북쪽 끝에서 왕복 4차로 도로를 하나 건너는 곳에 있다. 길 하나가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마치 길을 사이에 두고 백화점이 있는 곳은 왕푸징 밖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보다 심각한 단점은 백화점이 번화가의 중심가에 있지만 ‘자가용 접근의 오지’라는 점이다. 왕푸징 및 배후 거리는 이미 자가용 시대로 접어든 베이징 시민들이 차를 몰고 접근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곳이다. 베이징 중심가 창안제(長安街)에서 차를 몰고 가다 쑥 들어갈 수도 없다. 왕푸징 보행거리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지나는 대중교통도 적을뿐더러 택시를 타기도 쉽지 않다. 특파원 시절 백화점 근처에서 택시를 잡으려다 주변 도로에서 10여분 이상을 헤맸고 결국은 몇 백 미터 이동해서야 잡은 기억이 있다. 휴일이면 장사진을 친 자동차들이 소공동 롯데 백화점에 들어가 쇼핑을 하는 광경은 상상할 수가 없다.
조금 멀리에 ‘지하철 1호선 왕푸징역’은 있다. 그리고 왕푸징에는 베이징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의 관광객, 세계 각 국에서 베이징 중심의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등을 둘러보는 관광객이 모인다. 여름에는 그야말로 미어터진다. 그런데 그들이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할까. 이른바 주변에 사람은 많으나 ‘뜨내기 관광객’이자, 백화점이 타깃으로 하는 고급 소비자가 아니다. 고급 소비자는 차를 몰고 접근하기 편한 곳으로 간다.
중국에 처음 들어간 롯데는 그렇다고 치자. 중국의 대표적인 유통업체 중의 하나인 합작 파트너 인타이는 그럼 왜 이곳에 합작해서 백화점 문을 열자고 했을까. ‘50 대 50 합작’이라고 하지만 인타이는 건물을 제공하고 롯데는 월세를 내는 구조다. 인타이로서는 월세를 확보했으니 영업이 어떻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타이는 속으로 웃을 것이다’고 필패론을 편 전문가는 단언했다. 인타이는 어차피 크게 활성화되지 않고 반은 놀리는 건물에 ‘봉이 들어왔다’는 말까지 있었다.
롯데가 이곳을 보고 만족했다면 소공동 백화점처럼 가장 중심가에 있다는 점, 베이징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꼽았을 수는 있다. ‘암 백화점 자리는 시내 중심가여야지’하는 겉멋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개점 첫 해에 172억원, 이듬해 345억원 등 매년 적자가 늘어가던 왕푸징점은 2013년 지분 50%를 매각하고 철수했다. 롯데는 지금은 톈진(天津)에 두 곳, 선양(沈陽), 웨이하이(威海), 청두(成都) 5곳에 백화점이 있다.
3조 원을 투자한 선양 롯데월드 프로젝트도 지난해 11월 공사중지 처분을 받은 이후 작업이 멈춰있다. 쓰촨(四川) 성 청두에도 1조 원을 투입한 복합단지 프로그램을 건설 중이나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중국이 사드 보복의 대상을 마트에서 백화점까지 확대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마치 ‘볼모’가 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들 대규모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위협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중국이 ‘인터넷 쇼핑 세상’으로 바뀌고 있으며 알리바바와 징둥 같은 현지 업체들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도 2015년에만 백화점 150곳이 폐점했다.
1994년 중국에 첫 진출한 롯데는 22개 계열사가 120여개 사업장, 2만6000여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다. 백화점 5개와 롯데마트와 슈퍼 112개, 롯데리아 18개, 롯데시네마 12개점 등이다. 여기에 식품 및 화학계열사인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케미칼·롯데알미늄 등은 생산기지도 두고 있다.
롯데는 유통 뿐 아니라 전 분야를 통들어서 ‘아시아 톱 10’ 그룹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드 보복을 결정타로 맞아 롯데마트가 철수하게 된 것이 중국 사업 전반에 대한 재평가와 재출발의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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