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연설서 집중공격 퍼부어
“원유 판 돈으로 테러리스트 지원”… 오바마의 핵합의도 거듭 비난
외교가 “로하니 등 개혁파 입지좁혀… 노골적 압박 美국익에 도움 안돼”
이란 “중세시대에나 어울리는 연설”
“이란 정부는 거짓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부패한 독재를 가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연설에서 북한과 더불어 중동과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 이란에 대해서도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부국을 경제적으로는 고갈시켰고 주된 수출품이 폭력, 유혈사태, 혼란인 ‘불량 국가’(rogue state)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은 원유 판매 이익을 평화로운 이웃인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헤즈볼라와 다른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재정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 합의에 대해서도 기존의 비판적 관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솔직히 그 거래(이란 핵 합의)는 미국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엔 총회 연설에서 노골적으로 강경한 ‘반(反)이란 메시지’를 분명히 밝힌 것을 두고 중동의 긴장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신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발표하면서는 파키스탄에 대해 반군 테러단체인 탈레반을 지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중동 외교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이란 압박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안정적으로 이란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 등 이른바 이란 내 개혁파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외교가 관계자는 “현재 이란의 국민 정서와 사회 분위기는 변화해야 한다는 기조 속에 있다”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과 실제 핵 합의 파기 같은 대(對)이란 조치가 취해질 경우 이란의 고립은 가속화되고 반미 성향이 강한 강경파의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란은 중동 국가 중 교육열이 강한 나라라 국민 의식 수준이 높고, 선거도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나라다. 최근에는 중산층과 엘리트층에서 개혁·개방을 더욱 선호하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폐쇄적 국정운영을 지향하는 보수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이 중동의 헤게모니를 쥐는 것을 우려해 영향력을 줄이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막는 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란은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군사적 지원을 해 이슬람국가(IS)를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경제적으로도 이들 나라는 이란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는 “이란이 IS 억제와 주변국의 정세 안정에 기여했다는 건 분명한 현실”이라며 “현재 상황은 미국이 이란의 세력 강화를 우려하여 견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발언에 이란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핵 합의를 철회할 경우) 아무도 미국을 믿지 않게 될 것”이라며 “그들(미국)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전 상황(핵 합의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도 “트럼프의 무지한 증오 연설은 21세기 유엔이 아닌 중세시대에 어울리는 것”이라며 “유엔에서 할 말이 아니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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