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11>美경찰에 교통법규 위반 잡아떼기 했다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5일 15시 19분


존 에드가 후버 전 FBI 국장
존 에드가 후버 전 FBI 국장

‘Justice is merely incidental to law and order. Law and order is what covers the whole picture. Justice is part of it, but it can’t be separated as a single thing.‘ (정의는 법과 질서를 지켰을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법과 질서가 큰 그림을 만든다. 정의는 한 부분이지만, 개별적인 것으로 따로 떼어낼 수는 없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법과 질서를 준수했을 때 정의가 실현될 수 있지만 안 될 수도 있죠.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도 할 수 없습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법과 질서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 지극히 미국적인 발상을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로 앤 오더’(Law & Order·법과 질서)라는 제목의 미국 TV 드라마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도 방송되고 있던데요. 별로 재미는 없는 드라마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교통 법규 위반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여러 차례 ‘딱지’를 떼본 경험이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딱지(traffic ticket)를 ‘핑크 슬립(pink slip)’ 또는 ‘화이트 슬립(white slip)’이라 부릅니다. 경찰이 분홍색 또는 흰 종이에 위반 내용을 적어주기 때문인데요. 직장에서 해고 사실을 통지 받을 때도 “핑크 슬립을 받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이 교통 법규를 위반한 여성에게 ‘트래픽 티켓’을 발부하고 있는 모습.
경찰이 교통 법규를 위반한 여성에게 ‘트래픽 티켓’을 발부하고 있는 모습.

한번은 워싱턴에서 한 유명한 현지 한반도 전문가를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얘기를 하다보니 빨강 신호에 좌회전을 하게 돼 교통경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노랑 신호에서 좌회전을 시작해 중간 정도에 빨강으로 바뀐 겁니다. ‘완전히 내 잘못은 아니니 경찰한테 어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 적지 않느냐고 조수석에 탄 전문가에게 얘기했더니 이 같은 충고가 돌아왔습니다. “경찰이 위반했다고 하면 위반한 것이다. 경찰에 항의하다 범칙금만 더 올라간다. 경찰의 판단을 100% 존중해야 한다.” 경찰에게 미소 지으며 최대한 공손하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100달러짜리 핑크 슬립을 끊어주더군요.

위반을 했더라도 일단 잡아떼기, 신분 과시하기, 정 안되면 경찰 폭행하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태를 무마해보려는 한국 운전자들의 습성이 저도 몸에 밴 것일까요. 미국인들은 법과 질서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어릴 적부터 배우니까요.

미국에서 정의와 법질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이 글 첫 문장의 주인공은 ‘미연방수사국(FBI)의 전설’로 불리는 존 애드가 후버 전 국장입니다. 48년 동안 FBI 수장을 지내며 미국 대통령도 어찌 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후버 전 국장에게 정의보다 법과 질서가 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죠.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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