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제2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한 달 전쯤인 2009년 3월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은 은행 홈페이지에 ‘국제 통화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을 한 편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역할을 확대해 달러를 대체하는 슈퍼 기축통화로 활용하자”는 제안이었다. “어느 특정 국가의 경제 상황이나 국가 이익에서 독립돼 탄력적으로 발행될 수 있는 준비자산이 필요하며 SDR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후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흔들리고 있는 달러화에 대한 ‘선전 포고’였다.
그 후 위안화의 달러 제국에 대한 도전은 계속됐고 그 선봉에는 저우 행장이 있었다.
‘중국의 앨런 그린 스펀’ ‘미스터 런민비’ 등의 별칭도 가지고 있는 저우샤오촨(周小川·69) 런민은행 행장이 다음 달 공산당 제 19차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에서 물러날 전망이다. 2002년 12월 임명된 후 15년 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린스펀 의장(1987년 8월 ~2006년 1월까지 18년 재임)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게 재직하고 있다.
저우 행장은 국무원 부처 책임자는 두 차례 이상 임기를 지낼 수 없도록 돼 있는 내부 규정을 깨고 3차례 연임했다. 2013년 장차관급 정년인 65세를 맞았으나 역시 훌쩍 넘겼다. 중국의 11번째 런민은행장으로 첫 박사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저우 행장은 2013년 유임과 함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부총리급)에도 올라 런민은행 행장이 장관급에서 사실상 부총리급으로 격상됐다는 해석도 나오기도 했다.
저우 행장이 처음 임명될 당시 총서기는 장쩌민(江澤民)에서 후진타오(胡錦濤)로 바뀌었으나 장쩌민은 중앙 군사위 주석 지위를 유지해 실세로 남아있었다. 따라서 그는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習近平) 주석까지 3명의 최고 지도자를 모셨다. 미국 FRB 의장도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3명을 거쳤다.
저우 행장의 재임 시기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2010년)이 됐다. 그가 국제 통화시스템 개혁의 하나로 내세웠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위안화도 포함(2015년) 됐다. 신흥국의 IMF 궈터(지분) 조정도 이뤄졌다. 2차 대전 후 달러 중심의 금융질서를 흔드는데 그치지 않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2016년)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그는 재임 기간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과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노력했다. 위안화가 달러가 맡았던 역할을 일정 부분 가져오기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의 개혁 성향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 개방을 추진한 1980년대에 경제 체제 개혁의 정책 영향 업무를 맡은 것과도 관련이 깊다. 공학도였던 그였지만 국무원체제개혁방안 영도소조원,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위원(1986년) 등을 맡았다.
1991년 중국은행 부행장을 맡으면서 금융계로 옮긴 뒤에도 그의 개혁 행보는 계속됐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시절 기업공개(IPO) 제도를 엄격한 인허가제에서 심사제로 완화했다. 런민은행 행장을 맡은 지 3년째인 2005년 위안화 고정환율제를 복수 바스켓 기준 변동환율제로 바꿨다. 2013년에는 대출 금리에 한해 하한선을 폐지해 ‘절반의 금리 자유화’를 이뤘다.
저우 행장은 1975년 베이징화공학원(화학 전공)을 졸업한 뒤 칭화(淸華)대에서는 시스템 공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부친은 저우젠난(周建南)은 기계공업부 부장(장관)을 지냈고 모친도 국가과기위 위원을 지낸 고위 관료 가문 출신이다.
대학 전공과 달리 직장을 다니면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금융 전문가로 변신한다. 학자형 관료인 그는 국내외 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도 발표했다. 논문 가운데 ‘기업과 은행 관계의 재건’과 ‘사회보장: 체제 개혁과 정책 건의’는 중국 경제학계의 최고 논문상이라는 ‘쑨예팡 경제과학논문상’을 1994년과 1997년에 각각 수상했다.
그가 퇴임하려는 시기에 시 주석의 반부패 개혁의 칼 끝이 금융계로 확대되고 있다. 8월 4대 국유은행 중 중국은행과 중국건설은행의 회장이 교체된 것도 그 하나다. 올 가을이나 내년 3월 물러나는 그의 뒷머리가 개운치만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그가 추진한 위안화 국제화를 축으로 한 금융 개혁과 자유화에 대한 반론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저우 행장의 후임과 관련 미국 CNBC는 22일 궈수칭(郭樹淸·60)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과 장차오량(蔣超良·59) 후베이(湖北)성 서기를 저우 행장의 후임으로 유력하다고 전했다.
궈 주석은 인민은행 부행장, 국가외환관리국 국장, 건설은행 회장, 증감회 주석 등을 두루 거친 금융통으로 행장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그가 임명되는 경우 저우 행장의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 서기 계열의 장 서기가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마치 천민얼(陳敏爾) 충칭(重慶) 시 서기가 정치국원을 건너뛰고 상무위원에 진입한 뒤 시 주석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기세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왕 서기가 광둥(廣東) 성 부성장을 할 때인 1999년 ‘광둥 국제신탁투자공사’의 50억 달러 파산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면서 눈에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 인물 외에 류스위(劉士余·56)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과 이강(易綱·59) 인민은행 부행장도 거론된다.
중국은 중앙은행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서구 시스템과는 다르다. 따라서 누가 중앙은행 행장이 되는가가 정책의 큰 기조를 바꾸지는 않는다. 공산당 일당지배와 시 주석을 정점으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등 권력층이 주요 결정을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우 행장의 퇴진은 시 주석 집권 2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축돼 양적 양화를 지속했던 미국 달러 시대가 최근 마감됐다. 미 FRB가 자산 축소를 선언한 것이다. 그만큼 경제 체질 회복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스트 저우 행장’의 시대는 미 달러와 위안화의 새로운 통화 전쟁이 시작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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