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의 한 행사장. 한국에서 온 스타트업 스케치온의 윤태식 이사(37)가 어른 주먹보다 약간 큰 기계를 자신의 팔에 갖다 대자 순식간에 일회용 문신이 새겨졌다. 지켜보던 이들은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윤 이사는 “비누로 지우면 금방 지워진다. 일본에서 기업 간 거래(B2B)를 위한 파트너와 투자자를 찾고 있다. 쉬는 시간에 무료로 시험해 보시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날 열린 데모데이(Demo-day) 행사에 한국 스타트업 10곳이 참가해 일본 기업과 투자자 앞에서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인공지능(AI), 스마트 조명, 급여 관리 소프트웨어 등 분야도 다양했다. 스타트업들은 50여 명의 기업 관계자와 투자자 앞에서 10분간 발표하고 3분 동안 질의응답을 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360도 웨어러블 카메라를 들고 나온 링크플로우. 이 회사는 삼성전자 사내 벤처였다가 지난해 분사했다. 김용국 대표(44)는 “10년 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사진에 실망해 360도 카메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목걸이 형태의 카메라는 목에 걸면 사방의 풍경을 기록해 준다.
발표가 끝나자 “셀카를 어떻게 찍을 수 있나” “가격이 얼마인가” “영상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가”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100만 달러(약 11억4000만 원)를 투자받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세계 100대 AI 스타트업에 선정된 의료영상 진단기업 루닛, 간호사 맞춤형 근무관리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인 포휠즈 등에도 관심이 쏟아졌다. 쉬는 시간에는 스케치온의 일회용 문신기를 체험하려는 이들이 줄을 섰다.
심사를 맡은 일본 마이크로소프트(MS)의 구데켄 유키에(久手堅幸惠) 매니저는 “일본 벤처기업보다 스케일이 크고 다들 개성이 있다”며 감탄했다. 또 “일본과 달리 대기업에 있다가 창업하는 이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다른 심사위원인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의 쓰키무라 히로유키(月村寬之) 프로듀서도 “기술적 레벨이 높다는 걸 느꼈다. 프레젠테이션도 대단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발표가 끝난 뒤 서로 명함을 교환하면서 일본 진출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프랑스 통신사업자 오랑주의 일본지사 매니저는 “기술력이 높다”며 루닛에 큰 관심을 보였다. 링크플로우 김 대표는 “일본 소프트뱅크 관계자들과 미팅을 했다. 내년 4월 일본에서 360도 카메라 판매를 시작할 것”이라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네이버 등이 함께 만든 민관 합동 조직인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이날 행사를 주최했다. 2014년부터 ‘저팬 부트캠프’를 열며 매년 일본을 찾고 있다. 이번엔 3박 4일 일정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스타트업들의 피칭(창업자가 투자자를 만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것)이 예정돼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일본은 한국 스타트업이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좋은 시장인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아 마련한 행사”라고 말했다. 이어 “예년에 참가했던 스타트업 중에는 이를 계기로 일본 사무실을 내고 사업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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