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0월 3일]독일 통일은 실수와 착각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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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0월 2일 15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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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3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제국의회 의사당 앞에 통일을 축하하러 모인 시민들. 동아일보DB
1990년 10월 3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제국의회 의사당 앞에 통일을 축하하러 모인 시민들. 동아일보DB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을 이뤄 승리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는 패전국이던 독일 영토를 넷으로 나눠 점령했다. 기본적으로 아래 그림처럼 독일 영토를 나누되 소련 점령지 안에 있던 수도 베를린만 다시 4개국이 나눠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그 후 미국 영국 프랑스는 자신들이 점령한 영토를 합쳐 새로운 독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소련은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세 나라가 점령한 지역은 서독이 됐고, 소련 점령지는 동독이 됐다. 이후 동독 정부는 자국 안에 있는 서독 영토인 서베를린으로 사람들이 건너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쳤다. 이 철조망은 나중에 ‘베를린 장벽’이 됐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89년 5월(이하 현지시간)이었다. 역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헝가리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오스트리아와 맞닿은 국경에 있던 철조망을 제거한 것. 이 소식을 들은 동독 주민 1000여 명이 서독으로 망명하려는 생각을 품고 헝가리로 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국경을 넘을 때 헝가리 국경경비대가 묵인하면서 이들은 결국 서독으로 넘어갈 수 있었고, 그 후로 계속 동독 주민들은 국경을 넘어 서방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국경을 넘고 있는 동독 사람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촬영
국경을 넘고 있는 동독 사람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촬영


이런 흐름이 이어지자 동독 정부는 민심을 수습하려 ‘여행 허가에 대한 출국 규제 완화’에 대해 발표했다. 당시 사회주의통일당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1989년 11월 9일 TV에 출연해 “외국 여행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여행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경찰의 여권, 등록 부서는 모든 출국 비자를 지체 없이 발급하도록 지시한다. 동독 국민은 베를린 장벽을 포함하여 모든 국경 출입소에서 출국이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건 착각이었다. 원래 그가 발표했어야 할 마지막 문장은 “국외 이주에 대해 동서독 국경 혹은 동서 베를린의 모든 검문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잘못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기자회견에서 ‘시행령이 언제부터 발표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체없이’라고 답했다. 사실은 이튿날 아침부터 발효될 예정이었다.

‘여행 허가에 대한 출국 규제 완화’에 대해 발표 중인 사회주의통일당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 유튜브 화면 캡처
‘여행 허가에 대한 출국 규제 완화’에 대해 발표 중인 사회주의통일당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 유튜브 화면 캡처


이 방송을 본 동베를린 시민들이 하나둘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왔다. 원래 이 법률은 여권과 비자를 발급하는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일 뿐 여권과 비자가 필요 없게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방송 내용만 보고 “국경이 지금 당장 개방됐다”고 받아들였다.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이날 오후 10시경에는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국경 경비소로 몰려들었다. 이미 국경경비대에서 통행 허가증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결국, 국경경비대는 조용히 현장에서 물러났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동베를린 사람들은 아예 중장비를 가져와 베를린 장벽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국경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차례차례 국경을 넘었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동서독 국경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날 이후 동독 군대와 경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동독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했다. 결국 이듬해 3월 동독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가능한 한 가장 빨리 통일하자’고 주장한 ‘독일연합’이 승리하면서 통일에 가속도가 붙었다.

결국 원래 동독 지역에 있던 5개 주(州)가 부활해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통일 방안이 결정됐다. 이로써 법적으로 동독은 서독에 흡수된 게 아니라 공중분해 됐다. 독일 정부는 1990년 10월 3일 0시를 기해 공식적으로 ‘통일’을 선언했다.

독일 통일 소식을 전한 1990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독일 통일 소식을 전한 1990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독일이 공식적으로 다시 한 나라가 된 지 2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옛 서독 지역이 △소득 수준도 높고 △실업 수준은 낮고 △젊은 인구도 더 많다.



통일 당시 동독과 서독의 임금 격차는 약 1대3 수준이었다. 현재 남·북한은 최소로 잡아도 약 1대8 정도다. 많은 전문가가 한반도에 통일 국가가 들어선다면 독일보다 더한 후유증을 겪을 확률이 높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아직 남북통일의 길은 멀고 험해 보인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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