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ant to get out of a rut bad enough, it‘ll always happen. It’s up to you, though. No one else is ever gonna do it for you.”(당신이 정말로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언제라도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달렸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지 않는다)
‘타성에 젖는다’(stuck in a rut)는 말이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도 있죠.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새로운 것을 추구할 의지가 없어지고 거의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됩니다. 직장인들은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을 해봤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처음 갔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열심히 취재하러 다녔죠. 미 국회의사당 건물에 취재하러 가며 ‘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라며 뿌듯했고 백악관에 갔을 때는 ‘이러다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거 아닌가’하며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은 정치의 중심지라 뉴스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한반도 관련 뉴스건, 미국 사회에 관한 뉴스건 취재 열의에 불타올랐던 기억이 새롭네요.
1년 반 정도 지나 워싱턴의 취재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면서 뉴스를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부작용도 생겼는데요. 기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그거 기사 안돼’ 병에 걸릴 조짐이 보인 거죠. 어떤 사안에 달라붙어 파고드는 대신 섣불리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취재를 접는 병입니다. 기자에게는 치명적이죠.
매너리즘에 빠질 무렵 워싱턴의 한 북한 관련 세미나를 들으러 갔다가 AP통신의 아시아 담당 기자 옆에 앉게 됐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기자였죠. 그날 저와 그 기자의 차이가 있었다면 저는 세미나 내용을 대충 듣고 있었고 그는 마치 처음 들어본 내용인 듯 열심히 적어가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까봐 녹음까지 하면서 말이죠. 워싱턴의 한반도 관련 세미나는 매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반도 전문가 풀이 좁아 세미나에 비슷한 전문가들이 등장하기도 하구요. 그런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미나를 열심히 취재하는 세계 최고 통신사의 베테랑 기자. 어떤 차기가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날 오후 다른 세미나장에서 그 기자와 또 마주쳤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세미나였죠. 저는 약간 늦게 도착했는데 그는 맨 앞줄에 앉아 또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전에 수십 번도 더 취재했을 내용을 또다시 취재하면서 새로운 취재 포인트를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다양한 곳을 취재하는 기자는 약간 다르지만 말이죠. 타성에 빠지려 할 때, 모든 일에 의욕을 잃는 ‘귀차니스트’가 되려 할 때 저는 종종 그 기자를 생각합니다. 그는 여전히 흰머리를 휘날리며 낡은 녹음기를 든 채 취재현장을 돌아다니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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