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06년 첫 번째 임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필생의 과업’인 개헌을 준비했다. 국민투표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을 만들고 ‘2010년 개헌’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정권을 내놓았다.
2012년 말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로는 더욱 신중하게 개헌 문제를 다뤘다. 2013년 ‘2단계 개헌론’을 제기했다. 반대가 심한 헌법 9조(전쟁과 무력행사 금지)에 앞서 헌법 96조를 먼저 개정해 개헌 발의 요건을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꼼수’, ‘사기’라는 비판을 받고 발을 뺐다.
개헌의 문턱이 높다는 걸 깨닫고 나선 평화헌법의 실질적 무력화에 주력했다. 2014년 7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도록 헌법 해석을 바꿨다. 이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새 안보법을 통과시키며 헌법 9조 무력화를 시도했다. 헌법 9조는 무력행사를 금지한 1항과 전력(戰力) 보유 및 교전권 행사를 금지한 2항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별도의 조항을 만들어 자위대 보유 근거를 명확히 하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생각이다.
한동안 숨고르기를 하던 아베 총리는 올 5월 헌법기념일 70주년을 맞아 “2020년에 새 헌법을 실시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개헌의 포문을 열었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개헌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선거에서 압승한 만큼 개헌안 발의는 이제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많다.
야당에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희망의당과 일본유신회가 개헌에 찬성한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치면 중의원 내 개헌 세력이 80%나 된다.
하지만 개헌 항목에 대해선 조금씩 입장이 다르다. 공명당은 9조 개헌에 신중한 입장이고, 희망의당은 ‘9조를 포함해 논의하자’는 쪽이다.
개헌을 위해선 중·참의원의 헌법심사회(과반수)와 본회의(3분의 2 이상)를 통과한 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표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 사이엔 9조 개헌에 반대가 많다는 점이 변수다. 아사히신문의 총선 직후 여론조사에서도 반대(45%)가 찬성(36%)을 앞질렀다.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내각 총사퇴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개헌안 발의에 앞서 상당 기간 국민 여론 설득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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