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단’ 출신이지만 경제개혁 능력 인정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일 03시 00분


[中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열전]<5·끝> 서열 4위 왕양 부총리

“중국과 미국 관계는 결혼과 같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과 동성 연인 관계가 되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2기의 최고지도부 상무위원에 진입한 왕양(汪洋·62) 부총리는 2003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전략경제대화에 중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했을 때 미국 측 수석대표인 제이컵 루 당시 미 재무장관에게 이렇게 익살을 부렸다.

당시 외신은 유머감각 없고 단조로운 중국 고위관료들의 이미지를 깨는 위트였다고 평가했지만 중국 지도부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활동은 개인이 박수 받고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사례는 왕양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개혁적인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의 시장주의적 개혁 성향은 2007∼2012년 중국의 공업 발달 지역인 광둥(廣東)성 당 서기로 있을 때 날개를 폈다.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호적제도를 개혁해 가난한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쉽게 했다. 광둥성 경제를 값싼 제조업 중심에서 고품질 하이테크 산업 경제로 전환했다.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는 등롱환조(騰籠換鳥)를 강조하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시대에 뒤처진 기업을 억지로 살려두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개혁은 ‘광둥 모델’로 불렸다.

이는 국유기업 중심으로 전통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진한 당시 중국 권력의 실력자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 서기의 ‘충칭 모델’과 대비됐다. 당시 두 사람은 “케이크를 키우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나누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왕양) “케이크는 먼저 공평하게 나눠야 더 커진다”(보시라이)라고 설전을 벌였다. 보시라이는 부패 혐의로 숙청됐고, 2012년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계인 공청단 출신으로 유력한 상무위원 후보였던 왕양도 최고 지도부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시 주석 집권 1기 5년간 왕양은 농업, 수리, 홍수 및 가뭄 방지, 상무, 관광, 대외무역 분야 전반에 관여하면서 충성심을 인정받았다. 국무원 탈빈곤개발영도소조 조장으로 활동하면서 시 주석의 최우선 내치 정책인 빈곤 퇴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집권 2기에서 왕양을 경제개혁의 ‘조커’로 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그가 맡은 상무위원 서열 4위가 경제정책과 관계없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실제 그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왕양은 젊은 시절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90년대 안후이(安徽)성 퉁링(銅陵)시장이었던 37세의 왕양을 만난 뒤 “왕양은 매우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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