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딥포커스]푸틴에 날 세운 러의 ‘패리스 힐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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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러 대선 출마 선언 36세 솝차크

“솝차크가 러시아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내년 3월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여성 방송인 크세니야 솝차크(사진)가 그동안 정치적으로 금기시된 주제들을 하나씩 꺼내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솝차크는 지난달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다. 붉은광장에서 레닌 시신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치범 24명의 석방도 요구했다. 푸틴의 정적으로 내년 대선 출마가 금지된 야당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대선 출마 당시만 해도 푸틴 허락하에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솝차크가 의외의 당찬 모습을 보이자 러시아 정계가 당황하고 있다. 푸틴 측 정치홍보전문가를 지낸 글레프 파블로스키 씨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대선 캠페인으로 정치판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1981년생 36세 솝차크의 가장 큰 강점은 95%에 달하는 인지도다. 솝차크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러시아 최고 인기를 누린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며 스타가 됐다. 의상 디자이너, 영화배우, 앵커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 최고의 ‘잇걸(It girl·인기 많은 여성)’로 뽑혔다. ‘러시아의 패리스 힐턴’으로도 불리는 그는 러시아에서 10번째 고액 연봉자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500만 명, 트위터는 1만6000명이다. 본인 스스로 “러시아에서 이렇게 많이 알려진 사람은 푸틴과 나 두 사람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비판론자들은 여전히 그녀의 출마가 야권 분열을 노리는 크렘린과의 밀약에 따른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와 푸틴 사이의 끈끈한 인연 때문이다. 솝차크의 아버지는 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초대 민선 시장을 지낸 아나톨리 솝차크다. 푸틴은 당시 대외관계 담당 부시장으로 일하며 아나톨리 시장을 보좌했다. 아나톨리 전 시장이 1996년 재선에 실패한 뒤 시장 재직 기간의 부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때 푸틴이 도와줘 혐의를 벗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나톨리는 2000년 푸틴 대선을 돕던 중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푸틴은 9월 솝차크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모든 사람은 법에 따라 출마할 권리가 있고 솝차크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러시아 역사와 내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 훌륭한 인물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치켜세웠다. 솝차크도 “인간으로서 푸틴을 모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직 그녀의 운명은 점치기 힘들다. 당장 내년 대선에서 그녀의 돌풍이 거세다면 러시아 당국이 출마 조건인 30만 명 서명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서방과의 화해를 위한 이미지용으로 의도적으로 솝차크의 대선 출마를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공존한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푸틴#솝차크#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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