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총리 “암살 위협” 전격 사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6일 03시 00분


사우디 방문 중 TV연설로 발표… 배후로 헤즈볼라와 이란 지목
부친인 前총리 2005년 폭탄 피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이던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4일 이란의 내정 간섭을 비난하며 전격 사임했다. 그는 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위협의 배후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그 동맹 세력인 이란을 지목했다.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TV 연설을 통해 “불행히도 이란이 우리 내정에 간섭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는 국민을 실망시키기를 원치 않고 또 내 원칙에서 후퇴하고 싶지 않기에 총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는 헤즈볼라를 겨냥해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헤즈볼라의 무력을 동원하는 데 반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면서 “라피크 하리리 암살 직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팽배하다. 내 목숨을 노리는 음모가 진행되는 것을 감지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부친인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헤즈볼라 추종 세력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폭탄 테러로 숨졌다.

건설업을 하던 하리리는 부친의 암살 직후 레바논 정계에 입문해 수니파 정당인 미래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반(反)시리아 연대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지난해 11월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지명됐다.

레바논은 종파 간 권력 안배를 위해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 최고의 승자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수니파 중심의 연대가 급속히 약화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하리리 총리의 사임 결정이 헤즈볼라가 장악한 레바논 정세를 뒤집기 위한 사우디의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레바논의 종파 갈등이 격화돼 친사우디 정당과 친이란 정당의 대결 구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 외교부는 “하리리의 사임은 레바논과 중동에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미국과 사우디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중동연구소의 랜다 슬림 연구원도 “하리리 총리 사임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약화시키기 위한 사우디의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레바논#총리#암살#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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