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추격전… 추가범행 막은 시민영웅 2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8일 03시 00분


“총소리 들었다” 딸의 말 듣고 총들고 맨발로 뛰어나가 총격전
인근에 있던 트럭 운전사와 추격… 범인 차 도로표지판 들이받고 전복

미국 텍사스 교회에서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범 데빈 패트릭 켈리(26)가 더 큰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은 데는 ‘시민 영웅’의 역할이 컸다.

6일 텍사스 주정부 발표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총기 사건이 발생한 5일 교회 인근에 살던 전미총기협회(NRA) 강사 스티븐 윌퍼드(55)는 “총소리가 들렸다”는 딸의 말을 듣고 집 안에 보관돼 있던 소총을 집어 들었다. 맨발로 교회 쪽으로 달려간 그는 교회를 빠져나오던 켈리와 총격전을 벌였다.

켈리가 차를 몰고 달아나자 윌퍼드는 인근에 정차해 있던 트럭으로 달려가 운전사 조니 랭겐도프에게 “총격범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함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911 상담원과 통화하면서 최고 시속 145km로 달리며 약 18km를 추격했고, 켈리의 차량은 도로 표지판을 들이받고 뒤집혔다. 5분 뒤 경찰이 도착하자 켈리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뒤 스스로 총을 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정부의 프리먼 마틴 공공안전국장은 “법 집행기관의 최우선 목표는 총격범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착한 사마리아인(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2명이 법 집행기관을 대신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켈리의 범행 동기도 드러났다. 마틴 국장은 6일 “켈리가 전 장모를 노리고 교회에서 총기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전 장모는 당시 교회에 없었지만, 켈리의 총격에 전처의 할머니 룰라 화이트가 사망했다.

뉴멕시코주 홀로먼 공군기지에서 복무했던 켈리는 2012년 전처와 의붓아들을 폭행했다가 군사재판에 회부된 뒤 2014년 기본 계급(airman basic)으로 강등돼 불명예 제대했다. 당시 켈리가 복무했던 공군기지 요원이 국가범죄경력조회시스템(NICS)에 전과 기록을 제대로 입력했더라면 현행 법에 따라 총기를 구입할 수 없었지만 누락됐다. 허술한 총기 관리가 대형 참사를 부른 셈이다.

켈리는 총기 관리의 허점을 이용해 범행에 사용한 AR-556 소총을 비롯한 총기 4정을 텍사스주와 콜로라도주에서 2정씩 구입했다. 국방부는 전과 누락 경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을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총기 규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총격범을 뒤쫓은 전직 NRA 강사를 언급하며 “만약 착한 사마리아인이 총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26명이 아니라 수백 명 넘게 죽었을 것”이라고 총기 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사건 현장에서 자신의 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총알을 막아내려던 엄마 조앤 워드가 숨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워드는 당시 큰딸(9)을 엎드리게 한 뒤 둘째 딸(7)과 남녀 쌍둥이(5)를 껴안았지만 품에 있던 두 딸과 워드가 사망했다. 막내아들은 5발의 총을 맞고 수술을 받았지만 위독한 상태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김수연 기자
#총기규제#정신질환#장모#텍사스#교회#총격범#패트릭 켈리#트럼프#시민 영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