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특수 설계된 방탄 차량 ‘비스트’를 타고 미군기지를 방문하고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이 거대한 대통령 경호 차량은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과 함께 들어오지 않고 방한에 앞서 한국으로 ‘배달’ 됐습니다. 자동차 무게만 6.8t에 이르는 이 자동차를 배달한 비행기는 군용 수송기 C-17입니다.
군용기의 꽃은 전투기지만 군에서 묵묵히 일하는 1등 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수송기입니다. 우리 공군만 해도 지금 이 시각에도 수송기가 이 공항에서 저 공항으로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군 작전뿐만 아니라 재외국민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해당 지역으로 급파돼 국민들을 송환하는 역할 등을 다양하게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항공기 제작 업체에서도 더 효율적이고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화물기를 제작해 팔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최고 인기 수송기는 록히드마틴에서 만든 C-130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4년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한 C-130H형을 주로 운용합니다. 총 12대가 도입됐고, 그 중 4대는 길이를 늘린 개량형입니다.
무엇보다 이 비행기의 최고 장점은 신뢰성과 확장성입니다. 1954년 첫 실전배치 후 지금까지 63년 동안 쌓아 온 믿음은 다른 기종이 따라올 수 없는 강점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육해공군에서 2500대가 넘는 C-130를 운용해 왔습니다.
다만 이 비행기는 너무 오래됐습니다. 한국에는 1988년 처음 이 비행기가 도입됐습니다. 비행기는 정비만 잘 해도 수십 년을 쓰지만, 그래도 기령이 오래 되다 보니 공군은 한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의 틈새를 치고 들어온 곳이 바로 유럽의 신흥 강자이면서 최근 우리나라 공군에 공중급유기 A330 MRTT를 납품한 회사인 에어버스 사입니다.
에어버스사는 C-130 기종이 가지지 못한 틈새시장을 철저히 파고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준수한 성능을 가진 비행기를 뽑아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금 더 큰 몸집에 좀 더 많이 싣고, 좀 더 빨리, 멀리, 편하게 날 수 있도록 만든 비행기입니다. 아래 표를 보시죠.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속도와 고도입니다. 두 수송기는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는 터보프롭 엔진을 썼습니다. 터보프롭 엔진은 저속에서도 운용 효율이 좋고 단거리 이착륙도 가능한 엔진이지만 비행기 속도를 높이 올리기 어렵습니다. 최근 터보프롭 엔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프로펠러 6개를 단 6엽 엔진인데, 이 경우 최고 효율이 마하 0.55 근처에서 나옵니다. 6엽 프로펠러 대신 길이를 늘리고 폭을 줄인 프로펠러 8개를 달면 조금 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A400M이 바로 8엽 프로펠러 형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터보프롭 비행기가 0.7이 넘는 마하 속도로 3만 피트가 넘는 고도에서 나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주변 공기를 끌어모아 압축한 뒤 쏘아내는 터보제트 엔진은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에서도 잘 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이런 과정 없이 거의 대부분을 프로펠러가 공기를 밀어내는 힘으로 전진하는 터보프롭 엔진은 3만 피트 이상 고도에서 엔진이 제 힘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같은 단점을 에어버스는 어떻게 극복하고 높은 고도를 고속으로 나는 비행기를 만들었을까요. 8200kW에 이르는 고출력 엔진 외에도 에어버스는 “중요한 항공 역학 기술 세 가지를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째는 ‘뒤로 누운 날개(swept wing)’입니다. 군 수송기는 대부분 저속에서 안정적으로 날기 위해 날개를 동체에 수직에 가깝게 만들어 붙입니다. 그래야 낮은 속도에서도 잘 날기 때문입니다. 세스나 같은 경비행기 날개도 모두 이렇게 수직으로 일직선에 가깝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A400M은 과감하게 날개를 동체 후방 쪽으로 젖혔습니다. 이렇게 될 수록 비행기가 고속으로 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에어버스는 저고도 저속에서 안정적으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두 번째는 프로펠러 날개 모양입니다. ‘시미터 프로펠러’라고 부르는 이 프로펠러 모양은 중동에서 쓰던 ‘시미터 칼’ 모양에서 이름을 따 왔습니다. 프로펠러 모양을 굴곡지게 만들어 공기 저항을 최대한 줄이면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같은 프로펠러 모양은 A400M을 포함한 최신 프로펠러 항공기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 프로펠러들은 각각 반대방향으로 회전합니다. 에어버스는 엔진 회전 방향을 이렇게 바꾸어 약 4% 정도 효율을 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비행기를 지난 ADEX 기간에 실제로 타 보았습니다. 성남공항을 이륙해 대구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경로였습니다. 왕복 비행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국내선 여객기와 속도가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륙할 때 몸이 뒤로 쏠리는 느낌이 일반 여객기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가속도가 더 빠르디는 의미겠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군용 수송기는 내부가 어둑어둑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LED 실내등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어 실내는 비교적 밝았습니다. 물론 창문이 몇 개 없다보니 여객기같은 분위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실내 소음은 평범한 목소리로 대화가 가능한 정도, 소곤거리며 대화하기는 어렵고, 고함을 칠 필요는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승차감(?) 역시 여객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비행하고 있는 조종석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조종석입니다. 민항기인 A380 여객기와 거의 비슷한 비행전자장비(Avionics)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군 화물기 조종사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민항 비행사로 옮길 때 훨씬 편하니까요. 이런 조건 때문에 이 수송기 도입을 은근히 기대하는 조종사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비행기의 유지 비용은 C-130H를 운용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는 비쌉니다. C-130을 운용하다 최근 A400M 기를 4대 도입한 말레이시아 공군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자신도 알 수 없다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쓰던 C-130이 도요타 자동차라면 A400M은 벤츠나 BMW 같은 자동차입니다. 더 최신형이고 좋은 자동차를 타면 드는 돈도 더 많을 수 밖에 없겠죠.” 그 외 국내에서 써 본 적 없는 기종과 엔진(A400M에는 유로프롭社 엔진이 탑재됩니다.)인 만큼 정비의 효율성 같은 점도 고려 대상이 되겠죠.
그럼 그동안 미국 수송기들은 놀고 있었느냐. 물론 아니죠. 전통의 강자 C-130기 역시 최신 전자항법장비를 장착하고 C-130J로 환골탈태했습니다. 모양만 똑같지 다른 비행기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우선 다소 효율 면에서 밀렸던 4엽 프로펠러 엔진 대신 ‘대세’인 6엽 프로펠러를 장착해 엔진 효율을 높였습니다. C-130H 대비 엔진 추력이 19%(수평비행 기준) 향상됐고 연료는 15% 덜 쓰면서도 순항 속도는 시속 30노트(약 54km) 높아졌습니다. 탑승 인원도 10명 늘려 무장 병력 74명을 태울 수 있게 됐습니다. 계기판이 어지럽게 배치됐던 기존 조종석 대신 최신 글래스 콕핏(디지털 화면이 장착된 조종석)이 적용됐습니다. 승무원 수도 5명에서 3명으로 줄였습니다.
사용자 필요에 맞게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이 비행기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동체를 늘린 동체연장형C-130J-30, 공중급유기 KC-130J, 특수임무기 HC/MC-130J, 민간용 화물기 LM-130J, 해상초계기 SC-130J 등 수요자 요구에 맞게 다양한 변형도 가능합니다.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 측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효율은 높이면서도 운용 비용은 절감시켰다”고 자사 제품을 자랑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 ‘비스트’를 싣고 온 C-17 수송기는 보잉사의 제품입니다. A400M이나 C-130에 비해 엄청나게 큰 덩치와 무지막지한 탑재량, 항속거리를 가진 대형 기종입니다. 6톤이 넘는 자동차 두 대를 가로로 싣고도 공간이 남아 경호 차량까지 함께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화물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큰 덩치를 가지고도 이륙하는데 필요한 활주로 길이는 1km가 채 안 됩니다. 이보다 작은 수송기도 더 긴 활주 거리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프로펠러 엔진이 아닌 제트 엔진으로 이런 성능을 만들어낸 건 정말 입 떡 벌어질 일입니다.
수송기는 투박해 보이지만 전투기만큼의 항공 기술력과 노하우가 집약된 비행기입니다. 무거운 화물을 싣고 가뿐하게 날아갈 수 있는 능력, 10m도 안 되는 낮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는 능력, 비포장 활주로나 해안가 모래밭에서도 뜨고 내릴 수 있는 능력, 그러면서도 적진 하늘에서 파상공세를 회피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골고루 갖춰지지 않으면 수송기로서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투기와 훈련기를 만들었지만, 아직 수송기 같은 대형 기체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형 수송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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