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the white-picket-fence kind of guy.”(나는 화이트 피켓 펜스 부류의 남자가 아니다).
평범한 한국인이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결혼해서 자식 낳고 든든한 직장에 다니면서 내 집에서 산다.’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자식들은 공부를 잘하고, 남편은 순조롭게 승진하고, 아내는 집안 잘 꾸리고, 넓은 아파트에 살면 더 좋겠죠. 한 마디로 풍요롭고 화목한 가정을 꿈꾼다는 얘기죠.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은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교외(suburb)’라는 지역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도시에서 통근 가능 거리인 한 시간 정도 벗어난 곳에 중산층을 위한 대규모 거주지역이 발달한건데요. 도심이 황폐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교외는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죠. 미국에 여행 가서 번잡한 도시보다는 평온하고 ‘부티’나는 교외가 좋다는 한국 분들도 아마 있을 겁니다.
교외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넓고 집 앞에 잔디밭(lawn)이 있습니다. 그리고 잔디밭 끝에 길쭉한 흰색 판자를 세로로 엮은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화이트 피켓 펜스(white picket fence)라고 부릅니다. 화이트 피켓 펜스는 높이가 낮은 편이라서 도둑 방지용이라기보다는 장식용입니다.
화이트 피켓 펜스가 있는 집들은 어떤 집들일까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서적으로 화목한 가정입니다. 부부의 차 두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차고가 있고, 반려견을 키우고, 자녀 생일 때마다 친구들을 초청해 근사한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주말에는 모든 가족들이 공원에 놀러 가거나 인근 몰로 쇼핑을 가죠. 다만 실제로 이런 가정은 많지 않습니다. 미국은 이혼율이 워낙 높으니까요. 그래도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동경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화이트 피켓 펜스’라고 합니다.
이제 첫 문장의 의미를 아시겠죠. ‘나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데 적합한 남자가 아니다’, ‘나는 화목한 가정을 원하는 남자가 아니다’ 그런 뜻입니다. 결혼을 원하는 여자에게서 벗어나고픈 남자들의 단골 대사입니다. 이밖에 ‘화이트 피켓 펜스 드림’(화목한 가정에 대한 동경), ‘화이트 피켓 펜스 신드롬’(화목한 가정을 만드는데 목매다는 현상) 등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짐짓 평온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저 화이트 피켓 펜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미국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꽂혀 있는 태블로이드 신문 ‘내셔널 인쿼러’에서 많이 본 제목입니다. 화이트 피켓 펜스는 미국인에게 동경의 대상임에도 실제로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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