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중심 레퓌블리크 광장의 한 임시건물에서 9일 열린 크리스마스 유기동물 입양 행사장. ‘크리스마스 선물’로 유기동물
입양을 희망하며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이 철창 속 유기견과 그 앞에 적힌 관련 정보들을 꼼꼼하게 읽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가족에게도 동물에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벌어졌어요.”
프랑스 파리에 사는 이네스(11)와 마이산(9) 자매는 9일 새로운 식구가 된 고양이 ‘에하’를 번갈아 안고 볼을 비비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몇 년 전부터 졸랐지만 아파트에 살아 꺼리던 부모가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한 것.
에하는 버려진 고양이다. 자매가 이날 찾은 곳은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유기동물 입양 행사장. 프랑스 최대 유기동물 보호센터 SPA가 마련한 이 행사장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새 가족을 기다리는 400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보기 위해 9일과 10일 이틀 동안 파리 시민 1만2000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이네스의 어머니 나세라 씨는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고양이에게 두 번째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자신 외에 누군가를 책임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이산은 “에하가 벌써 나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다. 여왕처럼 키울 것”이라며 얼른 집으로 가자고 부모의 손을 잡아끌었다.
‘애완동물의 천국’으로 불리는 프랑스는 버려지는 동물이 한 해 10만 마리에 달하지만 대부분 새 가정을 찾을 정도로 입양 문화와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다. 우리나라처럼 유기동물들을 안락사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SPA 전국 63개 보호소에서 지난해 맡게 된 유기동물 4만8214마리 중 4만4222마리가 입양됐다. SPA 보호소에 온 유기동물이 새 가정에 입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48일. 입양 건수는 매년 늘고 있고 입양까지 걸리는 시간은 해마다 줄고 있다. 입양을 원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타샤 아리 SPA 대표는 “1년 중 ‘가족’을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크리스마스에 이 행사를 마련하는 것은 입양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입양은 새 가족을 만나는 매우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SPA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고 충동적으로 동물을 입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행사장에서도 입양을 결심했다고 곧바로 데려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신분증과 거주증명서 등 필수 서류를 구비해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백신 접종, 등록, 중성화 등의 비용으로 150∼300유로(약 19만∼38만 원)를 내야 한다.
동물마다 나이와 출신, 건강 상태 및 백신 접종 상태, 그리고 아파트에서 키울 수 있는지 등의 정보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입양을 결정하기 전 해당 동물을 잘 아는 SPA 직원들과 면접 과정을 거치면서 과연 본인의 거주 환경에 이 동물을 키우기가 적합한지를 최종 점검한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개, 고양이와 한동안 눈을 마주치면서 교감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두 딸과 함께 행사장에 나와 개들과 눈을 맞추던 바케트 씨는 “아이들도 저도 너무나 개를 키우고 싶지만 아직 최종 결심을 하지 못했다”며 “우리가 여기서 동물을 데려간다면 그에게 행복을 주고 가족의 한 부분으로 대해야 하는데 집이 그만한 준비가 됐는지 확신이 안 서 좀 더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