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에서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대신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통합러시아당 지도부들의 부패 혐의가 잇달아 나오면서 그들과 선을 긋기 위해서다. 푸틴 대통령은 60%대 중반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당선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선거 판에 예전과 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바짝 신경 쓰는 모양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후보 등록 절차가 시작되자 대항마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예전 대선과는 다른 모습이다. “나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푸틴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알렉세이 나발니 후보(41)는 24일 20개 도시에서 수천 명의 지지자가 대선 출마 지지 행사를 벌였다.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지지자들에게 “진짜 후보가 나타났다. 푸틴을 향한 맹목적인 지지는 이제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발니는 러시아 선관위가 과거 지방정부 고문 재직 시절 횡령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을 이유로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오고 있어 출마가 불투명하지만 이날 저녁 러시아 선관위에 후보등록 서류를 제출했다. 그는 징역형이 아니라 집행유예라 출마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출마가 허용될 경우 올해 유럽 선거 때마다 강한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젊은층의 위력이 러시아에서도 나타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러시아에서 첫 웨스턴(서방)식 선거를 보여주겠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앞세운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그는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자유민주당 대표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71)와 공산당 겐나디 주가노프는 여론조사마다 푸틴 대통령의 뒤를 이어 한 자릿수 지지율로 2, 3위를 달려온 선거 터줏대감이다. 각각 대선에 5번과 4번 출마한 경력으로 어느덧 70세가 넘은 이들의 이번 대선 출마는 당연시되어 왔다. 예상대로 지리놉스키는 21일 후보 중 가장 먼저 선관위에 등록을 했다.
하지만 원내 제2당인 공산당에서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공산당이 당원도 아닌 파벨 그루디닌(57)을 깜짝 후보로 선발한 것이다. 러시아투데이(RT)가 ‘한 시대의 종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러시아 정계에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양복보다 하얀색 농장 작업복이 더 잘 어울리는 그루디닌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딸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섬’이라고 불리는 이 농장은 사회주의 국가의 축소판이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집을 제공하고 의료와 학교 시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이 학교 건설과 지역 병원 개조 등에 많은 투자를 해 서비스의 질도 높였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 같은 멋진 유치원은 이 농장의 트레이드마크다. SNS에는 이런 그루디닌의 시도와 성과를 칭찬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그는 “우리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공산당도 변화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평가다.
반서방, 극우 민족주의 포퓰리즘을 지향하며 나발니와 이념적으로 가장 대척점에 있는 지리놉스키는 의회 의석수 대폭 감축, 최저임금 2배 인상, 사형 재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외에도 45세 부동산 거부 세르게이 폴론스키, 36세 여성 유명 방송 진행자 크세니야 솝차크 등 30, 40대의 젊은 다양한 경력의 후보들이 출마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사람만 32명에 이른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서방과의 대립을 극대화하며 내부 단합을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선일도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일로 정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3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냉전 이후 가장 활발하게 잠수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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